병원 옮길 때 'MRI 전송' 편하긴 한데…"의료민영화" 비판도

이창섭 기자 2024. 1. 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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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컴퓨터 단층촬영), MRI(자기공명 영상) 등 개인 의료 정보를 다른 기관에 전송하도록 허용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법안이 올해는 입법 문턱을 넘을지 주목된다. 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병원을 옮길 때마다 불필요한 중복 검사를 안 해도 된다. 환자 의료 정보도 같이 옮기면 되기 때문이다. 의료 데이터 활용이 쉬워져 신약 개발 R&D(연구·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 14조원 생산 유발 효과가 창출된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시민단체 등 일각에선 '의료민영화 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2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는 이른바 '디지털 헬스케어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이 법안은 환자 의료 정보를 개인 동의하에 제3 자에게 제공하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 의료법은 보건·의료 정보의 제3 자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법이 바뀌면 의료 정보의 유통과 활용이 더 쉬워진다. '의료 마이데이터'가 가능해진다. 마이데이터란 여러 곳에 흩어진 자신의 개인 정보를 한데 모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여러 은행사의 계좌나 자산 현황을 앱에서 한꺼번에 모아 관리하는 금융 마이데이터가 대표적이다.

의료 정보를 개인이 직접 관리하기에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이 강화된다는 의미가 있다. 실생활에선 불필요한 중복 자료 제출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 정보의 타기관 전송이 가능해져 이런 수고가 줄어드는 것이다.

보건·의료 산업 관점에선 개인 맞춤형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이 수월해진다. 병원과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등에 축적된 방대한 의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의료 마이데이터가 도입되면 앞으로 10년간 보건·의료 산업에서 최대 9만683명의 취업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생산 유발 효과는 14조3000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8조5000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법안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부 시민단체는 디지털 헬스케어 법안이 '의료 민영화'의 시동을 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전송 과정에서 개인의 민감한 의료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지적했다.

참여연대,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 12월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 헬스케어 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디지털 헬스케어법은 한 마디로 '의료·건강정보 민영화법'으로 기업이 개인 건강정보와 의료정보를 환자 동의 없이 가명 처리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기업 등 제3 자에게 정보를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헬스케어법은 민영 보험사들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선물하는 것이고, 아무리 혁신이라고 포장해도 환자의 주머니를 털어 기업주가 이익을 얻도록 하는 법이라는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18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같은 비판이 제기됐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식별 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민간 기업에 보건·의료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국민 여론의 반대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보험사들이 의료 정보를 갖고 저위험 고객만 선별해서 단물을 빨아먹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개인 의료 정보는 보험금 지급 심사 등 개별적인 용도에 활용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 정보 주권은 개인에게 있기에 내 정보를 어디로 보낼 건지는 개인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헬스케어법은 제1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처리됐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기에 남은 21대 국회 일정에서 법안이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오랜 시간 논의된 법이고, 정부 부처 내에서 이견 조율을 거쳤기에 우려만 불식하면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본 제도가 향후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될 것으로 예정된 점, 시행 후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개정안 도입 후 약 5년 경과 시에 사후 입법 영향 분석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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