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날리고 독도 지운 정신교육[한반도 리뷰]
정신교재는 사과했지만 대북기조는 강경 일변도…남북 긴장 최고조
홍범도 숨진 1943년엔 미‧소 준동맹…루즈벨트, 소련 붉은군대 찬미
洪 흉상 철거한 논리대로라면 루즈벨트도 친소 주의자로 배척해야
경직된 이념 잣대로 90년 전 재단…대전환기에 능동‧유연 대처 걸림돌
지난 연말 '독도 분쟁지역' 기술로 평지풍파를 일으킨 장병 정신전력교재 파동은 정부의 명백한 잘못이지만 사후 대처 측면에선 나름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단 몇 시간 만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하고 즉각 시정 등 엄중 조치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는 2022년 윤 대통령의 '날리면' 발언 논란이 보여주듯 지록위마 식 억지 주장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과거 행태와는 크게 다르다. 왜 그랬을까.
이번 파동은 공교롭게도 2015년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꼭 8년 만이다. 이후 한일관계는 현 정부 들어 겉으로만 좋아졌을 뿐 안에선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
예컨대 일제 강제동원 해법의 일본 측 '반 컵'은 채워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최근 관련 2차 손해배상 소송도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고 일본은 또 다시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이번 파동에 빠르게 대처한 것은 집권 초반과 달리 한일관계의 민감성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우리가 선의를 베풀어도 진정 화답한 적이 없고 언제나 고자세였다.
이 와중에 국방부가 4월 총선을 앞두고 다른 것도 아닌 장병 정신전력교재에 독도를 허투루 기술한 것은 집권여당으로선 비명을 지를 일이다.
'독도 분쟁지역' 정신교재로 홍역…홍범도 파동 이후 이념 논란 지속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연말 '파멸의 지옥'을 언급하고 '참수훈련' 사진을 공개하는 등 북한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신전력교재에선 '내부 위협세력'까지 처음 명시하며 이적행위로 규정했고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화 구걸'이라 비방하는 등 편향성을 드러냈다.
아마도 현 정부 이념성향의 끝판왕은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홍범도 장군 흉상 문제일 것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흉상 철거 반대여론이 압도적인데다 객관적 사실관계와 논리로 보더라도 철거의 명분이 없는데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홍범도 장군의 독립투쟁은 높이 평가하지만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던 인물로서 공산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반론이 나왔다. 다만 굳이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을 보탠다면 1943년 2월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낸 서신이 홍범도의 '결백'을 변호할 수 있다.
"미국 국민을 대신해 나는 창설 25주년을 맞은 소련 적군(붉은군대)에 대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대한 성과를 심대히 찬미하고자 합니다"(연결된 위기. 164쪽. 백승욱)
아무리 외교적 수사라 해도, 지금의 시각으로는 믿기 어려운 대화가 미국‧소련 수뇌 사이에 오갔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공동의 적인 독일과 일본에 맞선 준동맹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홍범도 장군은 비록 소련 공산당원이고 소련 군복 차림이었다고는 하나 당시 미‧소 관계로 보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나마 루즈벨트가 소련 적군을 '찬미'한 1943년 시점에는 이 세상 사람도 아니었다.
현재의 경직된 이념 잣대로 80년 전 과거를 재단하면 당시 소련과 손잡았던 미국마저 의심해야 한다. 이를 감당할 수 있나.
경직된 이념 잣대로 80년 전 재단…대전환기에 능동‧유연 대처 걸림돌
홍범도 흉상을 필두로 한 정부의 이념 편향이 진정 우려스러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국은 소련은 물론 당시로선 약소국 중국(중화민국)까지 '거두 회담'에 초청해가며 영국을 견제했고 결국 세계 패권을 이어받았다. 한편으론 중국 내 공산당과도 손잡고 국민당 독주를 제어했다.
그런가 하면 소련은 오히려 중국 국민당에 힘을 실어주며 마오쩌둥의 대륙 통일에 제동을 거는 등 현란한 외교로 세계를 주물렀다.
당시 스탈린에게 필요했던 것은 공산화 대국 중국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미래 잠재위협을 막아줄 완충 국가였다. 중국을 남‧북조로 나누는 아이디어마저 제기됐던 배경이다. 냉정한 국익 앞에선 친구도 이념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치 외교'를 내걸고 진영 대결의 첨병처럼 나섰지만 별 실익은 없이 남북 군사적 긴장만 높이고 엑스포 유치전에선 참패한 '글로벌 중추국가' 한국이 제대로 곱씹어볼 대목이다.
홍범도 흉상 철거의 진짜 문제는 우리에게 평면적, 획일적 세계관을 강요하는데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입체적, 능동적, 창의적 사고와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세계사적 전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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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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