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냐” 묻는 폭력 멈추고, “성평등 지지하냐”고 물어야
최근 몇 년 사이 포스터나 애니메이션 등에 쓰인 ‘집게손가락’ 모양 이미지가 혐오 표현이라며 민원을 제기하고, 해당 그림을 작업한 노동자를 온라인에서 공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2021년엔 한 여성 스포츠 선수가 ‘짧은 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페미니스트’라고 공격받기도 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에스엔에스에는 이런 이야기가 공유되곤 한다. 영어권 사용자가 활동하는 온라인 공간에 일부 누리꾼들이 이런 사건을 전하며 “‘페미’라서 문제”라고 글을 남기면, “그게 왜, 어떤 문제가 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페미니스트가 왜, 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공격을 한단 말이냐” 이해하지 못해 구체적 이유를 묻는다는 것이다.
물론 서구라고 해서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구 미디어들도 종종 페미니스트를 과격한 시위를 하는 사람, ‘진짜 여성’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묘사해왔다. 하지만 성평등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데다, 적어도 개인에 대한 일방적 공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페미 논란’에 대한 이런 국외 반응을 전하면 ‘한국 페미니즘은 서구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페미니즘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주장들이 경합하는 페미니즘‘들’로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의 페미니즘 연구자 벨 훅스의 책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보여주듯,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구조가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이자 모두를 위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을 고민해온 노력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성평등 가치에 대한 공적인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서울 혜화역에서 있었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당시 몇몇 주류 언론들은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왜 남성을 혐오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2015년 고작 몇 개월간 운영돼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존속하지도 못했던 ‘메갈리아’ 사이트를 상상적으로 소환해, ‘남성 혐오주의’로 형상화한 것이다. ‘집게손가락’ 같은 특정한 기호나 표현이 등장한 맥락은 생략한 채 ‘혐오’를 좁게 해석하는 등, 현실의 ‘차별’보다는 ‘말’을 문제삼는 것이었다. 성평등을 위해 애썼던 그동안의 노력을 무시하고, ‘페미니즘은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이라는 일부 커뮤니티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해 대중에게도 확산됐다.
인터넷 ‘밈’(Meme·재미를 목적으로 특정 발언·행동 등을 모방해 만든 온라인 콘텐츠)으로 빠르게 소통되는 구조 속에서 현대 사회에서 말의 의미는 순식간에 바뀌곤 하는데, 성차별을 타파하자는 페미니즘도 부정적 정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밈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너 페미냐”라는 질문은 폭력 행사를 위한 도구가 된다. 질문의 대상은 성평등이나 인권을 가르치는 사람, 연예인,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제작자, 기자 등 상대적으로 민원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질문의 목적은 상대를 괴롭히고 직장 생활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 질문은 ‘예’ ‘아니오’로 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라고 답하면 폭력의 대상이 되고, ‘아니오’라고 말한다고 해도 진의를 의심받으며 괴롭힘 대상에서 쉽게 풀려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남성 혐오’로 의미화되면서, 그저 비난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됐다.여성 의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페미’라고 공격을 받을 수 있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페미니스트라면 고용할 수 없다’ 혹은 ‘페미니스트라면 해고할 수 있다’라는 식의 노동권 침해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그 결과, 청년 여성들이 비판하고자 했던 성차별 양상, 디지털 성범죄로 대표되는 젠더 기반 폭력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점차 이루어지기 어려워졌다.
‘페미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악성 민원에 응답하기보다는 폭력의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우선되어야 하는 건, 사회적 공론장에서 성평등 의제가 축소되는 위축 효과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적 논의의 장에서 “너 페미냐”는 질문을 다시 성평등 가치 실현의 의미를 묻는 질문으로 전환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폭력을 멈춰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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