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과 경찰 때리는 주취자…방뇨에 성희롱까지 [취재후]
요즘 같은 추위에도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바깥에서 잠드는 주취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주취자가 의식이 없거나 부상을 입었을 경우 경찰이 이들을 데려가는 곳이 있는데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입니다. 대형병원 응급실에 주취자 병상을 마련해놓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상주 경찰관도 근무합니다.
취재진이 응급의료센터에서 만난 의료진과 경찰관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추위에 주취자 수 줄었지만...'저체온증' 등 상태 더 심각
취재진이 찾은 곳은 인천의 유일한 공공의료원이자 주취자 응급 의료센터를 운영중인 인천의료원.
새벽 4시쯤 주취자가 이송되는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만취해 길거리에서 점퍼를 벗은 채로 웅크리고 있던 40대 남성을 발견했습니다. 남성의 코끝에는 얼어붙은 콧김이 고드름처럼 매달린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신속히 구급대원에게 공동 대응을 요청해 남성을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데려왔습니다.
의료진은 주취자의 체온을 높이기 위해 담요로 몸을 감쌌고, 가온 장치를 이용해 수액을 따뜻하게 덮혀서 주입했습니다. 손가락에 찰과상이 관찰됐기 때문에 혹시 모를 뇌출혈 등 외상도 체크해야 했습니다. 복부와 가슴에는 엑스레이를, 뇌는 CT 촬영까지 했습니다. 응급실 환자에 대한 기본 절차입니다.
주취자인 이 '응급 환자'는 가끔씩 소리를 지르거나 담요를 걷어차는 등 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요. 이때문에 낙상을 막기 위해 응급실 근무 중인 의료진 세 명과 이송 요원 한 명까지 모두 동원돼 주취자의 몸을 붙들어야 했습니다.
이날은 경찰과 의료진의 공조로 주취자 치료가 제때 이뤄진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의료진 "치료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고성에 성희롱, 폭행까지 다반사"
취재진은 주취자의 치료를 마친 의료진에게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근무가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인천의료원 김민영 간호사는 경력 10년차로 응급실에 온 지는 6개월이 되었습니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서 응급환자를 치료하던 도중 단순 주취자가 와서 치료를 요구할 때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주취자가 많을 때는 응급실 병상이 모두 주취자로 차서, 긴급한 환자의 병상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주취자가 폭력을 휘둘렀을 때였습니다.
"젊은 분이 술을 드시고 계단에서 넘어지셨다면서,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술을 너무 드셔서 의식이 명료하지 않으시니까 협조가 전혀 안 되고 저희를 때리고 상주 경찰분도 때리고 저희가 전혀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경찰에 연락을 해서 주취자를 연행해 갔었어요." -김민영/간호사
이효정 간호사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2년 동안 주취자의 방뇨와 구토뿐만 아니라 성희롱을 많이 보고 겪었다고 말합니다.
"속옷까지 훌렁훌렁 벗으시는 분들 많으시고 성희롱하시는 분들도 있고...침대에서 이제 그냥 소변 보시는 분들도 워낙 많으시고 구토하시는 분도 다반사고요." -이효정/간호사
이 간호사는 동료 간호사들도 다들 겪는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의료진들이 열악한 근무 여건 속에서 정신적 피해까지 감내하고 있는 현실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취자의 치료뿐만 아니라 주취자 '보호'를 해야하는 상황도 잦았습니다. 주취자가 퇴원이 가능한 건강 상태여도, 술이 깨지 않아 보호자와 연락을 하지 못하면, 퇴원까지 의료진이 주취자를 맡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화장실이라도 가시게 되면, 저희가 가서 옆에서 지켜보고 같이 가고 데리러 오는 것까지 계속 해야 돼요. 근데 아무래도 취하신 분이시다 보니까 제대로 된 걸음을 못 하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지켜봐야 하고 혹시라도 넘어지면 또 낙상하면 안 되니까. " -이효정/간호사
이런 열악한 현실은 현장에서 주취자를 발견하는 경찰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 경찰 "주취자가 경찰도 때려, 욕설은 참기도...'저체온증' 우려, 대부분 응급센터 보내"
인천의료원 상주경찰관인 양회훈 경감(인천중부경찰서 생활질서계)은 의료진과 경찰관 폭행 사건이 다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관들이 주취자에게 맞는 경우도 많았지만 모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을 시키지도 못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일단 의료진을 보호하고, 또다른 주취자가 올 수 있어서 대기해야 하는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경찰관뿐만 아니라 의료진 폭행 사건이 있어요. 올해 제가 보기에는 한 6건 정도 되지 않았나. 저도 한 번 발차기도 맞고 멱살도 한 번, 목도 한 번 맞았는데 (주취자를) 공집(공무집행방해 혐의 입건)은 안 했었고... 의료진 폭행당한 건은 현행범 체포해서 지구대에서 가서 처리한 게 몇 건 돼요. 욕하는 것은 다 그냥 감수해요. 여기 의료진도, 저희들도 그렇고." -양회훈/상주경찰관
상주 경찰관은 보통 3교대 근무를 하는데 한 달 근무시간이 240시간을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250시간에서 260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있어서 노동 강도가 셉니다. 간혹 주취자가 없을 때도 긴장 상태로 대기해야 하고, 주취자가 있을 경우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체크해야 합니다.
경찰관은 직무집행법 4조에 '주취자 보호'가 업무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경찰은 주취자 건강 상태를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단순 주취자라고 해서 돌려보냈다가 숨진 경우도 있어서 지금은 주취자라고 하면 그냥 신고 들어오면 거의 데려온다고 볼 수 있죠. 서울은 전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6개에서 4개로 줄였다는 얘기도 있고. 존치는 그래도 해야 하지 않나. -양회훈/상주경찰관
그러나, 취재진이 알아보니 이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설치가 확대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복지부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공공사업 가점' 폐지 계획"...경찰청 "주취해소센터라도 만들어야"
보건복지부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운영 병원에 대해 공공사업 참여 가점 0.5점을 주고 있는데요. 지난해 공공사업 가점이 적용되는 기간인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는 가점을 유지하지만, 7월 이후 평가부터는 가점을 폐지할 계획으로 확인됐습니다. 주취자를 보호하는 것이 병원의 업무가 아니라는 게 복지부의 입장이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평가에 가점을 부여하고 있었던 건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에 경찰이 상주함으로써 주취자의 폭행과 폭언을 방지해, 응급 의료 종사자와 환자들을 보호하지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전한 응급실 환경 조성을 위해 경찰 상주 의무가 들어간 건데, (병원이 주취자) 보호시설로서의 인센티브로 보여져서 문제가 되면 빠져야 마땅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운영이 여의치 않자, 경찰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부산 경찰청이 지자체와 협업해 만든 '주취해소센터'입니다.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지 여부를 소방대원이 먼저 살펴주는 '구호소' 개념으로 센터를 바꿔 운영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지자체와 소방 등이 협력해 주취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포함한 '주취자 보호법'도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습니다.
노동진 경찰청 생활질서계장은 "부산처럼 주취자 보호센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공청회를 통해서 의견을 들어봐야 하고 저희도 보건복지부에 한 번 찾아가서 설명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 계장은 "아직 지자체의 입장은 듣지 못했다"면서 "주취 환자,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 보호에 목적에서 매우 중요한 법안이기 때문에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야 "주취자 보호법 발의했지만 논의도 못 했다"
'주취해소센터'와 같은 주취자 보호 시설을 만들자는 내용의 법안은 지난해 6월 발의됐습니다.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환경노동위원회)과 민주당 임호선 의원(행정안전위원회)이 각각 '주취자 보호법'을 발의했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별다른 논의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여야 의원실 관계자들은 "각 부처간 이견이 많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무래도 소방과 지자체 등 인력이 많이 소요되는 데다 예산도 추가로 들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부산의 경우 부산의료원 별관에 센터를 설치했는데요. 병원의 부속 시설 또는 인접한 시설을 이용해야할 가능성이 있어 복지부 등과의 협의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단은 법안대로라면 지자체 등의 예산이 주로 들어가게 되는데,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산한 추가 예산은 연평균 109억에서 138억 가량입니다. 매년 이 정도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계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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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기자 (paz@kbs.co.kr)
추재훈 기자 (mr.ch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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