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 총선 99일 앞두고 제1야당 노린 '정치 테러'
뇌경정맥 손상 진단에 서울대병원으로 이송
"2시간 넘게 수술, 현재 중환자실서 회복 중"
민주당, 선거 일정 올스톱 "비상 상황"
이낙연 신당 등 비명계 행보 주춤할 듯
국민의힘도 "일정 최소화" 파장 예의 주시
"양극화 정치가 불러온 테러" 자성론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피습당했다. 지지자라며 접근한 60대 남성이 흉기로 목 부위를 찔렀다. 99일 남은 4·10 총선을 향해 정치권이 민심을 파고드는 시점에 제1야당 대표를 노렸다. 민주주의 근간을 파괴하는 정치 테러에 총선 정국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행위를 용납해선 안 될 것"이라며 신속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여야 모두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이번 참사를 초래한 양극화된 진영 갈등과 대립의 정치는 과제로 남았다.
"사인 하나만" 지지자인 척 돌진하며 흉기 휘둘러... 아무도 예상 못했다
"사인 하나만 해주세요."
60대 남성 피의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공격을 가했다. 이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취재진과 지지자에 둘러싸인 혼란한 상황을 틈타 범행에 나섰다. 이 대표가 걸어서 이동하는 가운데 질의응답이 계속 이어지자, 당대표 비서실장인 천준호 민주당 의원이 "위험하니까 조심해달라"고 고성을 지를 만큼 현장 상황은 어수선했다.
오전 10시 27분. 머리에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파란색 종이 왕관을 쓴 피의자는 사인을 핑계로 이 대표 앞까지 거침없이 돌진해왔다. 이 대표가 평소처럼 "네" 하고 인사를 건네자 피의자는 미리 숨겨온 흉기를 휘둘렀다. 이 대표는 순식간에 목 부위를 가격당해 그 자리에서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피습에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찰 인력 41명이 배치돼 있었지만 아무도 사전에 제지하지 못했다.
피 흘린 이재명, 경정맥 손상 진단에 서울대병원에서 긴급 수술
이 대표는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20여 분간 피를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급차에 실려 부산대병원으로 후송돼 응급치료를 받은 이 대표는 헬기 편으로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사건 발생 5시간 여만이다. 당초 1시간 예상됐던 수술은 2시간을 넘겨 5시 56분께 끝났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집도의 설명에 따르면, 뇌경정맥 손상이 확인됐고, 정맥이 흘러나온 혈전이 예상보다 많아서 관을 삽입하는 수술이 진행됐다"며 "현재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에 있다"고 밝혔다.
피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돼 부산 강서경찰서로 이송됐다. 부산경찰청은 브리핑에서 "이 대표를 찌른 피의자는 57년생 남성으로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다"며 "범행 동기는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총길이 18㎝, 날 길이 13㎝인 흉기를 사용했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비상상황, 국민의힘도 일정 최소화... "극단의 정치가 불러온 참사"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예정된 문재인 전 대통령 예방 등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이 대표 퇴진을 압박하며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던 이낙연 전 대표와 비명계 의원들의 행보도 주춤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계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의원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당의 '탈' 자라도 꺼낼 수 있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당 안팎에선 이번 테러를 계기로, 이 대표를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층의 결속력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은 3일 의원총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한다.
국민의힘도 이 대표의 쾌유를 기원하며 일정을 최소화했다. 피의자의 배후를 놓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자 여야는 "불필요한 발언을 자제하라"(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정치적 해석이나 범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달라"(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면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극단적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권의 현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적대시하는 게 당연해진 분위기가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든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며 "대한민국 모두의 불행"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끊임없이 상대를 저주하고 공격하는 작금의 정치는 사실상 내전 상태와 다름없다"면서 "언제든, 누구든 이런 정치 테러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부산=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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