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이 된 온양 찌질이… 밝아서 더 통쾌한 ‘남자판 더 글로리’
지질한 본모습을 감추려는 허세에 낄낄대다가도 묵직한 마지막 한 방에 눈물이 핑 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싸우면서 크는 거라고, 원래 그런 거라고 방관들을 혔지. 근디 그건 말이여. 때리는 놈의 입장이지 절대로 맞는 놈의 입장은 아니여.”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는 1980년대 말 충남 부여, 맞고 사는 게 일상이던 주인공 병태(임시완)가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들에게 복수를 꾀하는 통쾌한 역전극. 키노라이츠 통합 콘텐츠 랭킹 1위, 네이버 많이 찾는 드라마 1위 등 토종 OTT 드라마로선 이례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지난달 말 종영했다. 마지막 회가 공개된 이후에도 “이틀 만에 10회를 몰아봤다”는 새로운 팬이 계속 유입되면서 키노라이츠 콘텐츠 랭킹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소년시대’의 차별점은 그동안 어둡고 진지하게만 다뤄졌던 학교 폭력 문제를 B급 코믹 학원물에 녹여냈다는 점이다. 쓴 약을 먹이기 위해 표면에 설탕을 입힌 당의정처럼 유쾌한 캐릭터들과 코믹한 대사, 복고풍 감성을 섞어 시청층을 넓혔다. 뼈대는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한 명씩 물리치는 남자판 ‘더 글로리’지만, 나약하기만 했던 소년이 약자를 보호하는 강인한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밝고 경쾌하게 연출했다.
강자의 횡포에 끙끙 앓아본 사람이라면 두드려 맞고도 나약한 자신을 탓하고 ‘어떻게 하면 덜 맞을까’ 고민하는 병태에게 이입하지 않을 수 없다. 폭력의 수위가 높은 탓에 초반엔 학교 폭력을 희화화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명우 감독은 “궁극적으로는 반면교사의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코미디라는 장르는 똑같이 무거운 주제를 다루더라도 좀 더 유연하게 전달할 수 있고, 더 많은 이에게 소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비주얼, 톱스타 캐스팅에 수백억을 들인 대작이 쏟아지는 가운데, 1980년대 충청도 농촌 배경의 소소한 이야기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유머의 8할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덕이다. 꼬치꼬치 캐묻는 친구한텐 “아, 구황작물이여? 뭘 자꾸 캐물어싸~”라고 말을 돌리고, 고생해서 딴 깻잎 가격을 깎으려는 가게 주인에겐 “염소 이불이나 만들어야겄슈”라며 능청을 떤다. ‘이?’ 하고 선창하면 ‘이~!’ 하고 잔을 부딪치는 드라마 속 건배사가 유행이 되는 등 시청자들이 너도나도 충청도 사투리를 따라 하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소년시대’의 책임 프로듀서인 안혜연 쿠팡플레이 상무는 “다소 어둡고 장르물이 많았던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오랜만에 선보인 코미디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면서 “젊은 세대에겐 레트로(복고) 감성으로,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다양한 연령층이 편안하게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코믹 연기에 처음 도전한 임시완은 바가지머리에 하얀 러닝셔츠를 입고 눈물 콧물 흘리며 아낌없이 망가졌다. 이명우 감독이 임시완을 보며 “이 작품 끝나고 은퇴할 생각인가 싶었다”라고 할 정도. 주연인 임시완·이선빈을 제외하곤 대부분 역할에 낯선 신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이 감독은 “‘어디서 저런 배우를 찾았지’ 싶을 때 시청자들은 조금 더 쉽게 드라마에 빨려 들어간다. 그것이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시절 인기 가수였던 박남정의 ‘기역니은 춤’을 재현한 임시완의 댄스 영상부터 ‘충청도 주댕이 배틀’이라 불리는 하이라이트 장면 등이 소셜 미디어에 퍼지면서 마지막 주에는 첫 주 대비 시청량이 2914% 늘었다. 쿠팡플레이 내 리뷰 35만 건, 역대 오리지널 콘텐츠 중 재생 수 1위로 자사를 대표할 만한 시리즈가 나온 것.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시즌2 제작까지 검토 중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여러 OTT와 방송사에서 넷플릭스와 비슷한 장르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흥행 코드를 조합해 만든 비슷비슷한 콘텐츠는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소년시대’는 대규모 제작비나 스타 캐스팅에 승부를 걸지 않고도 차별화된 소재와 흥미로운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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