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과 하양 연필만으로도 이렇게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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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셀 수없이 많은 선이다.
연필 끝에서 나와 손에 잡힐 듯, 캔버스에서 생생하게 살아난 고양이들은 때로는 그들끼리, 때로 소녀(사람)와 어우러지며 온기를 나눈다.
연필로 그린 고양이가 주인공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왜 연필일까, 왜 고양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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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셀 수없이 많은 선이다. 이것들이 모이고 겹치니 포실포실한 털이 되었다. 연필 끝에서 나와 손에 잡힐 듯, 캔버스에서 생생하게 살아난 고양이들은 때로는 그들끼리, 때로 소녀(사람)와 어우러지며 온기를 나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박성옥 작가는 이력이 독특하다. 경성대 사진학과 출신으로, 학부생이 되고서야 미술 관련 수업을 들으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채색화를 그렸다. 주인공은 주로 자신을 닮은 소녀였다. 동물을 꼽자면, 고양이보다는 뱀이 더 자주 등장했다. 연필로 그린 고양이가 주인공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왜 연필일까, 왜 고양이일까.
“의자에 앉아있는 주인공 옆 구석에 고양이 일부를 그린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잘 그리지도 못해서 조그맣게 그렸는데, 내가 소녀와 꽃 말고 다른 어떤 생명체를 그릴 수 있다는 게 스스로 좋았던 것 같아요. 성공했네 이런 느낌?” 고양이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박 작가는 “진짜 뭔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들이 모티브가 된 것도 아니고, 캔버스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상상 속 동물’이라고 했다. 그리다 보니 고양이였던 것이지, 고양이로 거창한 무언가를 드러낼 의도로 시작한 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박성옥의 고양이가 주목받는 이유는 있다. 작품 속에선 고양이들이 소녀를 안마하기도, 소녀가 날고 싶어하는 고양이를 떠받쳐주기도 한다. 상하관계에 놓인 사람과 동물이 아닌, 말 그대로 ‘반려’의 모습이다. 털 한 올 한 올이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주는 것에서 나아가 고양이의 움직임·표정도 애정을 담아 세밀하게 담은 점 또한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가‘연필을 든 이유는 현실적인 데서 찾을 수 있다. 박 작가의 본업은 절에서 스님을 돕는 일이다. 일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자연스레, 도구를 많이 준비해야 하고 중간에 중단하기 어려운 채색화보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언제든 그릴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게 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각을 담기보다 비워내고 무를 향해 가는 느낌”이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수없이 반복되는 긋기를 통한 털 묘사는 참선 수행 과정이기도 하다.
오는 21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갤러리 OKNP에서 열리는 박성옥 개인전 ‘온기(溫氣)’에서는 이전 전시와는 달리 비교적 규모가 큰 작품 위주로 전시된다. 추상적 표현을 담은 삼색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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