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재래시장의 마법
오래 눌러산 주민이 많은 동네에 살다 보니 운 좋게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제법 활기차게 운영되는 재래시장이 있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 소중함을. 나는 정가 가격표가 붙은 마트 쇼핑에 익숙한 세대다. 예전엔 말없이 계산하면 되는 마트와 달리 사장님과 필요한 물건과 가격이라도 이야기해야 하고, 몇 번 낯이 익으면 알은체를 하는 시장 문화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장이 편하다. 나이 들고 넉살이 늘면서 좋은 점이라면 어릴 때 불편했던 많은 것들이 아무렇지 않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게 시장이 편해지면서 나는 마치 새로운 쇼핑몰을 발견한 것처럼 재래시장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금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예컨대 시장 안 여섯 개 떡집 중 가장 맛있는 떡을 파는 곳이 어디인지, 수제 두부집에서 국산 콩 두부를 사려면 뭐라고 주문해야 하는지, 제일 먼저 맏물 봄나물을 가져다 두는 청과물 가게는 어디인지…. 나는 그리고 아침 일찍 자그마한 전집에 가면 갓 구운 수수부꾸미를 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에게 재래시장 투어를 시켜준다면 내가 그리는 지도는 아마도 이와 같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가족들이 다녀와 이야기하는 시장의 모습은 내가 아는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다. 나는 시장 속 어느 떡볶이집이 맛이 없는지는 알고 있지만, 남편이 사온 질 좋은 갈매기살은 어느 정육점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어머니는 정월대보름에 올라온 기가 막히게 부드러운 고사리 나물을 파는 반찬집을 찾아내셨는데, 내가 갔을 때는 대보름 대목을 맞이해 노점을 확장한 탓인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그게 과일 가게 앞집인지 참기름 가게 옆집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장은 마치 찾아오는 사람에 맞춰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마법 세상에 있는 것 같다. 저마다 다른 가게에 드나들고, 다른 지도를 그리게 되는 재래시장. 그것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더 정겹고 가깝게 만들어 주는 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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