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47] 공무원의 휴식권과 대민 서비스
영웅적인 면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랑이 보건대 서기 비슷한 역할을 맡아보기로 작정했다. 모든 일에는 등록이나 통계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랑이 맡아서 했다. 그랑이야말로 보건대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조용한 미덕의 실질적 대표자였다. 그는 선의로, 주저함이 없이 자기가 맡겠다고 했던 것이다. 리유가 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자 그는 놀라서 말했다. “제일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하는 건 뻔한 이치입니다. 아! 만사가 이렇게 단순하면 좋으련만!”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많은 우체국이 점심시간에 셔터를 내린다. 2016년, 2인 이하 우체국에서 시작된 점심시간 휴식제가 5인 이하로 확대됐다. 주민센터와 구청 등 일부 지자체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에 우체국과 관공서를 이용할 수 없는 직장인은 난감하다. 개인 정보 관련 업무는 함부로 부탁할 수 없다. 가족도 직장인인 경우가 허다하고 대리인 입증 절차도 까다롭다.
병원도 점심시간엔 진료하지 않는다. 사무실 밀집 지역 식당가엔 오전 일을 마친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으러 일제히 나온다. 공무원이 점심시간을 지키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공무원의 존재 이유는 대민 봉사다. 출생, 취업, 이사, 장례 등 국민 일상과 밀접한 관공서는 세금으로 운영된다. 공무원의 권리와 편의를 위해 국민에게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은 주객전도다.
죽음이 만연한 도시, 의사와 여행자, 기자, 종교인 등 자원봉사자들이 전염병에 맞서 싸운다. 시청의 말단 임시 직원 그랑도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찾아 묵묵히 해낸다. 그 덕에 봉사대가 돌아간다. 소설은 ‘한 사람의 영웅이 있어야 한다면 바로 이 보잘것없고 존재도 없는 영웅,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착한 마음씨에서 나오는 용기를 간직한 그랑’이라고 소개한다.
시중 은행이 점심시간 집중 근무제를 시범 운영한다. 정오부터 1시까지 모든 창구를 열고 고객을 맞는다. 오후 4시에 셔터를 내리는 대신 6시까지 영업하는 지점도 있다. 직원의 권리 대신 고객 입장을 배려하자고 사고를 전환한 결과다. 직장인과 겹치지 않게 점심시간을 옮기면 심각한 인권 침해일까. 공무원 100만명 시대다. 새해엔 철밥통, 구태의연, 복지부동이란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내고 대민 서비스의 보람을 자부하는 영웅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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