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늙으면 무조건 요양원·요양병원? 아니다, 줄일 수 있다
2023년은 저출생과 관련된 이슈로 우리 사회가 더 빠르게 암울한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수많은 보도가 주요 언론의 메인을 1년 내내 장식한 해였다. 수많은 기획 다큐멘터리에서 저출생과 고령화를 다루었고, 각계의 전문가들이 출연해 내뱉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큐멘터리들은 출생률 제고에 성공한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보여주며, 이와 대조되는 우리나라는 정해져 있는 어두운 미래로 더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는 허망한 결론과 함께 끝났다.
주로 이러한 분석에서 사용되는 모든 담론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근거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며, 반대로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다. 이 계산에서 당연시하는 것은, 65세라는 일정한 시점이 지나게 되면 사람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며, 아프며, 돌봄이 필요하게 변하는데, 그 모습은 바뀌지 않으며 미래에도 바뀌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전제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늙기의 기술’ 지면을 통해 필자가 사회에 알리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전제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평균수명과 중위 연령이 증가하는 움직임과 함께 생물학적인 노년에 도달하는 시점도 점차 미뤄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삶을 어떠한 자세로 바라보고 설계하는지에 따라 몸과 마음의 노화 궤적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65세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이 늘면 그 나라는 활력을 잃어야만 할까? 필자의 대답은 ‘아니요’다. 한 나라의 나이 듦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나이 듦 궤적을 합쳐 놓은 결과다. 그리고, 이 나이 듦 궤적에서 숫자 나이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사람의 총체적인 기능이다. 미래에 이 기능 궤적을 결정하는 것은 첫째는 ‘내재 역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개인적 신체, 인지, 정서, 사회적 기능 총합의 유지와 증진이다. 예를 들어, 꾸준한 근력 운동은 80대에도 걸어다닐 수 있는 몸을 가지게 해준다. 둘째, 내재 역량의 부족한 부분을 사회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근력이 떨어져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원활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집에 고립되지 않고 외출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총체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면 선순환이 된다. 외출을 할 수 없으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지고, 사람을 만나기 어려우면 기분과 인지가 나빠진다. 우울감이 악화되면 식욕이 나빠지고, 바깥으로 나가기는 더욱 싫어지는 탓에 근육 기능은 더 떨어진다. 반대로, 노년의 머리와 몸을 가지게 되더라도 누구든 어떻게든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머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자연스럽게 내재 역량이 꺾이는 것도 예방된다. 노쇠와 치매가 예방되는 것이다.
옆 나라 일본은 이렇게 사회 구성원의 기능을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는 주요 국가 대비 최저 수준이지만 노동인구(20~64세) 1인당 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미국, 영국, 프랑스를 앞서는 수준이다. 이는 고령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일본은 고령층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함과 동시에 후기 고령자(75세 이상)의 신체, 인지 기능 보존을 위한 지역사회의 돌봄 예방 체계를 구축하고, 돌봄 요구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복지를 연계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해 왔다.
싱가포르는 일본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아예 느리게 나이 들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통해 세계 여섯 번째의 ‘블루존(세계 최고의 장수마을)’ 목록에 추가되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존 블루존들에 비해 싱가포르는 정책에 기반한 블루존 2.0의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도시를 걷고 건강하게 식사하도록 장려하고, 자동차 보유, 음주, 흡연에는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인의학적 개념을 기저에 둔 연령 친화적인 의료 시스템을 통해 병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노쇠가 이미 발생한 상황, 즉 내재 역량이 감퇴하는 상황에서도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시스템을 형성한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 어떻게 나이 들지 고민하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의료는 치료 중심, 전문과 진료 중심으로 분절화되어 있고, 노인 의학 개념은 많은 이들이 생소해한다. 어르신에게 병원은 위험하기만 하다. 병은 치료되었지만, 섬망, 낙상, 욕창으로 고생하고, 결국 요양원,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는 일이 다반사다. 퇴원 후에는 통합적 관리를 받기 어려워, 여러 과를 돌며 병원 탐방을 한다. 당장 걷기 어려운 상태가 되더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간 확실한 돌봄 요구(장애)가 생겨나야만 한다. 병만 보다가 사람은 침상으로 가는 꼴이다. 의료에는 선제적 노쇠 예방의 개념이 없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는 돌봄 예방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쇠한 어르신의 기능 회복과 재활은 기본적으로 가족의 몫이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내재 역량마저도 쉽게 깎아 먹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노쇠가 있으면 10년 뒤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가 필요할 가능성이 10배 높고, 반대로 선제적인 노인의학적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은 요양 시설에 입소하거나 사망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인다. 이런 증거들을 보여주어도 관료들은 복지부동할 뿐이다.
고무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의 일하는 고령층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년 빈곤을 원인으로 꼽지만,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은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생각하며,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도 비교적 덜 느꼈다. 더 건강한 이들이 일을 지속할 가능성도 높지만, 일이 신체, 인지, 사회적 자극을 유지할 수 있어 내재 역량 유지의 선순환을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지금 갓 65세를 넘고 있는 분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욱 건강하고, 부유하고, 잘 교육받았다. 이들이 앞으로도 내재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앞으로 한 나라의 실력은 그 나라 사람들의 나이 드는 모습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어두운 미래는 확정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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