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국민을 사랑했던 선각자‚ 김대중 前 대통령을 기리며

경기일보 2024. 1.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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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단상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헌정 사상 최초의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6·25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외환위기를 조기 극복했다. 남북한 화해·협력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는 6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갖은 탄압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행동하는 양심’의 길을 걸어왔다. 군사독재 정권이 숱하게 목숨을 노리고 정치적 생명을 끊으려 했지만 이 땅의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향한 그의 기개는 절대 꺾이지 않았다.

그는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았다. 1971년 평생의 후유증을 남긴 의문의 교통사고, 1973년 중앙정보부가 자행한 납치 살인 미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과 사형 선고 등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6년간의 옥살이와 3년간의 망명, 1987년 6월 항쟁 전까지 투옥과 망명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대부분이 가택 연금되는 등 감시와 핍박이 늘 뒤따랐다. 그리고 분열과 증오에 기생한 한국 정치의 망국병 지역주의와 색깔론은 정치적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에 오른 뒤 자신을 탄압하고 모욕했던 이들에게 한 치의 정치 보복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했다. 관용을 통해 국민 통합과 공존의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통합의 정신은 IMF를 극복하는 데 있어 전 국민적인 동참과 지지를 이끈 지렛대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각자였고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세계가 지식정보사회로 나아갈 것을 오래전에 꿰뚫어 봤다. 혼돈의 국난 상황에서도 정보기술(IT) 및 벤처산업 육성에 큰 힘을 쏟아 정보화 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문화에 대한 남다른 조예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정책 기조를 세우면서 문화·예술인의 자율과 창의를 강조했다. 문화의 힘이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대비하면서 한류 열풍의 기반을 마련했다.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중요 업적이다. 그는 사회보장제도를 시혜적 조치가 아닌 권리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으로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했고 4대 사회보험의 체계를 정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했다. 인사청문회와 특별검사제 도입으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으며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시켜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도모했다.

대내외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처한 작금의 현실에서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다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다. 그는 무엇보다 국민을 우선했고,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잊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 정치는 신념이 과잉되고 책임은 결핍돼 있다. 그는 정치인이 갖춰야 할 자세로 ‘서생적 문제의식,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를 강조했다.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국민의 삶’이라는 현실의 바탕을 떠나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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