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4년 ‘CEO 박세리’···“열린마음으로 경청하되 검증은 꼼꼼히”
화려함보다는 튼튼한 기초에 주력
용인R&D센터, 새로운 전환점 될것
‘세리팍 LA 오픈’ 통해 K컬처 소개
스포츠 선수가 은퇴 후 사업가로 성공하는 경우는 사실 흔치 않다. 운동을 하면서 모은 돈을 몽땅 까먹는가 하면 명예까지 잃기도 한다. 최근 펜싱 전 국가대표 선수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점에서 박세리의 성공적인 사업가 변신은 다시 한 번 그를 돌아보게 한다. 그는 스포츠·문화 스타트업으로 4년을 보내면서 자신의 꿈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박세리의 회사를 직접 찾았다. ‘골프 여왕’이라는 박세리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그의 회사, 바즈인터내셔널은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공유오피스에 둥지를 틀고 있다. TV에서 보여주는 ‘리치 언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CEO 박세리’의 사업 철학은 확고하다. 화려함보다는 튼튼한 내실을, 급격한 성장보다는 뿌리를 확실하게 내린 다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을 추구한다. 기초가 단단해야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서다.
박세리의 명성을 이용하려고 접근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깐깐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CEO로서의 박세리를 만나 사업가로 겪은 지난 4년과 그의 사업 철학, 그리고 그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3월에 열릴 ‘세리 팍(Seri Pak) LA 오픈’에 관한 얘기도 곁들였다.
오늘은 CEO로서 박세리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2019년에 회사 설립하고 벌써 4년이 됐다. 그동안을 돌아본다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회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굉장히 바빴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다들 어려웠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코로나와는 무관하게 굉장히 바쁜 회사생활을 했다. 그렇다고 쉬웠던 건 아니다. 회사 식구들이 하나에서 둘, 둘에서 이제 열이 넘을 만큼 성장했다. 그만큼 부담감도 많아졌다.”
박세리 하면 담력이 센 걸로 유명한데 사업가로서는 어떤 부담감이 있나?>>>
“어떤 방향성을 갖고 갈 것이냐, 내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과연 회사를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냐 같은 것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았다. 나나 공동대표나 둘 다 외적인 성장보다는 하나하나 단단하게 만들어가려고 노력을 했다. 탄탄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 등의 방향성이 더 뚜렷해졌다. 그래도 부담감은 아직까지도 있다.”
처음에는 공동대표랑 둘이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직원이 몇 명인가?>>>
“현재 11명이다. 식구가 늘수록 책임감이 더 커지는데 감사하게도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잘 해줘서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직원들도 다들 가족 같아서 ‘가족 비즈니스’를 한다는 느낌이다. 운동을 했던 내가 비즈니스 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직원들이 뒤에서 잘 받쳐준다. 나는 대표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선수 때처럼 함께 투어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구체적인 매출을 밝힐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어느 정도 성장했나?>>>
“감사하게도 사업 시작 첫해부터 무난하게 잘 성장을 했다. 지금도 꾸준히 안전하게 잘 커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직원들이 보는 박세리는 어떤 것 같나.>>>
“글쎄, 나는 직원들과 굉장히 편하게 지낸다. 직원들이 나보다 다 어리니까 내 동생들처럼, 가족처럼, 후배처럼 챙긴다. 그래도 직원들은 불편할 수 있을 거다. 아무래도 대표다 보니까. 그래도 같이 있을 때 보면 다들 거리감이 없이 편안하게 지낸다. 직원들과 소통도 많이 하는 편이다.”
내부적으로 호칭은 어떻게 하나.>>>
“나는 그냥 감독님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아직까지는 대표보다는 감독 호칭이 더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대표라는 호칭은 아직은 약간 안 어울리는 옷 같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면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어땠나.>>>
“보통 시작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수입보다는 투자해야 될 게 많으니까. 근데 우리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뭘 크게 벌릴 필요가 없었다. 비용이라면 발품을 팔고 다닌 거다. 이런 공유오피스를 선택한 것도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걸 처음부터 베이스로 깔고 가다 보니까 스타트업들이 초기에 가장 많이 겪는 경제적인 불편함이 줄었던 것 같다.”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나 같은 경우는 운동선수에서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많은 분들을 찾아뵙고 내 생각,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말씀드리고 함께 일을 만들어서 키워야 하는데 이런 일은 그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거다. 그런 것들이 처음에 되게 어려웠다. 근데 이제 하나하나씩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러워지고 회사 생활이나 여러 여건도 어느 정도 편안해 진 것 같다.”
현재까지 회사 매출의 큰 부분은 어디서 나오나.>>>
“지금은 내가 나가는 강연과 방송 활동 등으로 얻는 수입이 현저히 더 많다. 하지만 2024년부터는 달라질 거다. 경기도 용인시와 합작한 R&D(연구개발) 센터가 조만간 오픈하고 나면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용인 지역 학교 등에 보내게 된다. 이를 통해 생활체육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거다. 센터에는 복합 문화시설이 들어가 교육 외에 다양한 행사도 할 수 있게 된다.”
용인 R&D 센터 개관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건가.>>>
“그렇다. R&D 센터는 내가 하고자 하는 큰 그림 중 하나였다. 선수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한데 그 시작인 거다. 회사도 용인으로 이전할 계획이고 내년 3월이나 4월부터는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은퇴 전에도 가끔 제2의 인생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여러 그림을 그려봤을 거고, 상당한 준비를 했을 텐데 어떤 것들이 있었나.>>>
“말씀한 것처럼 선수 생활 중에도 은퇴 후 다양한 미래를 항상 그려왔다. 그러다 후배들을 보면서 정확하고 뚜렷하게 그린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도 많지만 후배들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게 달라졌다. 내가 선수생활을 하면서 아쉬워했던 부분이나 필요했던 부분을 도화지 속에 그렸다 지웠다 하면서 설계를 했다. 그러다가 은퇴 후 2~3년 정도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리 내가 골프계에서 많은 우승을 하고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고 한들 사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혼자서 잘 할 수 있을지, 내가 믿을 만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 후 생각이 확고해질 때쯤 지금의 공동대표와 많은 부분을 상의를 하면서 준비를 했다.”
사실 공동대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개해 달라.>>>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까지 가셨던 분으로 이름은 이치훈이다.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야구 쪽에 계속 있었다. 한국 선수들을 미국으로 진출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뉴욕 양키스의 아시아 총괄 스카우트 디렉터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우리 회사 공동대표를 하면서 여전히 양키스의 한국 담당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난 건 1997년 미국에서다. 내가 US 여자오픈에 예선전을 거쳐 출전했는데 대회장이 오리건주에 있었다. 그 분은 포틀랜드 쪽에 사셔서 대회장이 집에서 가까웠다. 한국 선수가 출전한다고 하니까 응원 차 왔다가 처음 알게 된 거다. 그게 벌써 2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업을 함께 하자면 서로 뜻이 맞아야 할 텐데 공동대표와 초창기에 어떤 부분에서 서로 공감을 했고, 또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준비했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그냥 친한 사이였다. 운동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매번 볼 때마다 여러 고민거리를 얘기하다가 서로 회사를 운영하는 마인드 쪽에서 마음이 딱 맞았다. 초기에 빠른 성장보다는 뿌리를 단단히 먼저 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린 그림이 회사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첫 기둥이 됐던 거다.”
사업을 시작할 때 롤 모델이 있었나.>>>
“사업은 아니지만 미국에 진출한 후의 내 롤 모델은 낸시 로페스였다. 선수로서 엄청난 업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존경스럽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분이다. 내가 신인으로 한창 투어를 뛸 때 그 분도 투어를 뛰고 계셨는데 어딜 가나 인기가 많았다. 아마 그때 그 분이 40대 후반 정도였을 때인데, 성적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주 대회를 나왔고 대회마다 팬들도 한결 같았다. 그 분의 성적이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팬들이 왜 성적에 관계없이 좋아할까 궁금해 했는데 그 분이 갖고 계신 사람에 대한, 그러니까 팬이나 타인에 대한 존중이 보였다. 그런 걸 보면서 나도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나도 은퇴하고 나서 단순히 ‘성적만 대단했던 사람이야’라기보다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한 사람으로서 정말 존경받을 만해’ 같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그 분을 보면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지금도 한 사람으로서 존경 받을 수 있는 인품을 가지는 게 목표다.”
(낸시 로페스는 LPGA 투어에서 메이저 3승을 포함해 통산 48승을 거둔 레전드다. 1987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70~1980년대 여자골프의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주니어 골프 프로그램에도 많은 지원을 했다. 지역 사회에 대한 다양한 공헌을 인정받아 2009년에는 미국 대통령이 주는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다.)
운동선수일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인생의 꽃이 활짝 핀 것 같다. 과거에는 골퍼 박세리였지만 지금은 온 국민에게 모두 친숙한 박세리가 돼가고 있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예전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내 이미지가 딱 정해져 있었다. 운동선수로서의 모습밖에 없었다. 무뚝뚝하고 거만하고, 그래서 오해받기 딱 쉬웠다.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만 아셨다. 근데 은퇴 후 방송활동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다. 운동선수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되게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물론 예전에는 지금처럼 내 성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었고 운동하는 모습만 봤으니 오해도 하셨겠지만, 원래 성격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어쨌든 많은 분들이 편안하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예전에는 운동선수 박세리였는데 지금은 그냥 편안한 옆집 언니 같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신다. 특히 여성분들한테 인기가 굉장히 많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여성스러우면서도 자신감 있는 그런 모습이 좋다고 하더라.”
최근 펜싱 국가대표 출신 선수의 사례에서 보듯 유명 운동선수가 은퇴 후 사업을 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접근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 나 같은 경우에는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난 항상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큰 사고는 안 난다.”
그래도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덴데.>>>
“첫 인상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많은 만남을 통해 판단하려고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갑자기 뭔가 진행되면 안 된다고 본다. 급하면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급하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뭘 한다? 솔직히 나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걸 시작할 때는 완벽하게 맞는지 안 맞는지 따져본 후 그 다음 일을 진행하는 성격이다. 왜냐하면 내가 젊은 시절부터 노력해서 쌓은 내 명예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부분에 굉장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도 접근해온 적이 있다 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골프 관련 용품이나 아이디어 상품, 그리고 사업 등 정말 다양하다. 기획안 같은 건 굉장히 잘 만들어 온다. 페이지도 두껍다. 이런 투자가 있는데 몇 천억 원이 들어간다는 둥 설명도 그럴싸하게 잘한다. 근데 결국에 잘 들어보면 내 이름과 명성이 필요한 거다. 내 이름을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으면 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 일이 잘못되거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결국에는 내 명예가 실추되는 거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심하다 할 정도로 신중하다.”
지금도 박세리의 이름만 이용하려 접근해 오는 사람들이 있나?>>>
“당연하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 회사를 어떻게 키우고 싶다는 꿈이 있을 텐데.>>>
“꿈이야 항상 크게 갖는 편이지만 나의 종점은 ‘박세리 테마파크’를 완성하는 거다. 교육, 생활, 문화와 관련한 모든 시설이 완비된 골프 테마파크를 만드는 게 가장 큰 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게 교육 사업이다 보니까 선수들을 위한 공간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솔직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2년 사이에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그림을 그리던 차에 용인시와 인연이 닿은 거다. 그런 점에서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용인시와 함께 하는 일은 후배들이 은퇴하고 나서 또 다른 길을 갈 수 있게끔 발판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운동과 사업 중 어떤 게 더 힘든가.>>>
“원래 본업이 제일 쉽다고 하지 않나. 골프가 어렵지만 그래도 골프가 쉬웠다. 골프는 나만 관리하면 되고 내가 해야 될 것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사업은 다르더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걸 알아가야 하는 과정들이 되게 많다. 그게 쉽지는 않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알아가고 배워간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나. 그런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운동선수 때와 비교하면 힘들다. 운동을 할 때는 혼자만의 틀이라는 게 있어서 내 위주로 하면 됐지만 지금은 항상 주변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 상대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사업을 위해 경영 관련 서적을 읽거나 나름 변신을 위해 노력한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했던 건 마음이 ‘오픈’이 돼야 된다는 거였다. 사업을 하려면 갑작스러운 일들이 굉장히 많다. 선수 때는 그런 상황이 오면 안 하면 됐다. ‘나 안 해, 못해’ 그러면 끝이었다.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야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다. 오픈된 마음을 가져야 뭐든 내가 감당하고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시작하면서 알았던 것 같다. 물론 경영 서적을 읽는 것도 필요하다. 근데 진짜 중요한 건 실전에서 이뤄진다. 그러니까 그런 열린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내 마음이 항상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거다.”
가끔 스타트업과 관련해서 강연도 하는 것 같던데 주로 어떤 얘기를 하나?>>>
“주로 내 경험담을 얘기한다.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이런 성공을 하게 됐다는 식이다. 성공 속에서 중요한 건 어떤 거고,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등 내 인생이나 사업 철학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강연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을 텐데.>>>
“엄청 부담스러웠다. 운동선수가 사업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었다. 근데 막상 사업을 하다 보니까 분야만 다를 뿐 똑같은 과정인 것 같더라. 그래서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했다는 식으로 경험에 대해 들려준다. 하나부터 열까지에 대해 어떤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박세리라는 사람의 마인드나 인생에 대해 들려주니까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 강연 의뢰도 굉장히 많아졌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좋은 주제가 될 것 같은데.>>>
“맞다. 슬럼프와 극복 과정에 대한 얘기를 꼭 한다. 슬럼프라는 것도 결국은 ‘번 아웃’인데 분야만 다를 뿐 사업에서도 똑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
슬럼프가 지금 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겸손이라는 것도 더 크게 와 닿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겸손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렵다고 얘기를 한다. 스스로 자만하는 순간 딱 거기서 성장은 멈춘다. 자신이 항상 부족하다는 자세로 겸손하면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된다. 슬럼프는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너무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런 마인드를 그때 배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교훈을 얻고 보람된 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딱 슬럼프 시기라고 말한다. 물론 앞으로 더 큰 일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내가 다시 일어서고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거 아닌가 싶다.”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그리고 안니카 소렌스탐까지 위대한 골퍼들을 보면 현역 시절 또는 은퇴 후 코스 설계를 했다. 코스 설계에 대한 욕심은 없나.>>>
“당연히 있다. 코스 설계도 앞으로 하려는 사업에 들어가 있다.”
박세리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목표 중 하나일 텐데.>>>
“뷰티나, 의상, 그리고 음식 등에 관심이 많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다 하고 싶다. 지금은 컬래버 형식으로 시작을 하고 있다. AHC와는 선크림을 출시했고, 랑방과 협업한 골프의류도 곧 나올 예정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씩 만들고 있다.”
3월에는 LPGA 투어에서 ‘박세리 브랜드’를 걸고 대회도 개최하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뭐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이다. 선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회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호스트를 해봤고 이제는 글로벌로 나가 LPGA 투어에서도 하게 됐다. 솔직히 현실적으로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근데 다행히도 훌륭한 후원사와 함께 할 여건이 돼서 해외에서도 하게 됐다. 나에 대한 가치를 그동안 쌓아온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싶어서 뿌듯함도 있다.”
(오는 3월 21일부터 나흘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스 베르데스 골프클럽에서 LPGA 투어 ‘세리 팍 LA 오픈’이 열린다. 총상금은 200만 달러다. 박세리는 국내에서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OK금융그룹과 함께 KLPGA 투어 박세리 인비테이셔널을 개최했다.)
처음에는 KLPGA 투어 대회를 준비한다고 했었다.>>>
“저희도 그렇고, 협회와도 스케줄상 여러 가지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선회했다. LPGA 대회를 열면 한국 선수들을 더 많이 초청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산에서 열린 월드 매치 때는 골프와 문화를 접목했다. 그런 시도를 LPGA 대회 때도 구상하고 있나.>>>
“한국 문화를 골프라는 도구를 통해서 조금 더 수준 높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그게 다른 대회와 차별화할 수 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확히 1시간이 지나자 밖에서 사람들이 안쪽을 바라보며 기웃거렸다. 다음 시간 회의실을 예약한 사람들이었다. 공유오피스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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