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쫀득한 식감!” 악어 ‘생곱창’ 즐기는 대머리수리 [수요동물원]
썩은 시체 파먹는 대머리수리는 생태계의 파수꾼
독성 박테리아도 끄떡없는 최강의 소화력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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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의 구성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무엇을 먹느냐와 어떻게 먹느냐죠. 아무리 싱싱한 고급 식재료로 만든 귀한 요리더라도 먹을 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즐거움이 결여돼있으면, 공감을 얻지 못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둘 중서 전 ‘무엇’보다도 ‘어떻게’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소박하고 형편없어보이는 음식이더라도 먹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먹방이 될 수 있어요. 오늘의 주인공인 검은대머리수리의 식사장면처럼 말이죠. 그렇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시체나 파먹는 엽기적 족속으로 손가락질받곤 하는, 그러나 청정세상을 위해서 오늘도 공중을 선회비행하는 어둠의 맹금류, 대머리수리입니다. 우선 동영상부터 보실까요? 비위가 약하신분은 건너뛰시길 권합니다.
간, 천엽, 곱창, 대창, 양... 벌써부터 군침이 돌지 않습니까? 야들야들한 식감에 영양을 풍부하게 품은 내장은 사람을 포함해 육식동물에게는 치명적 유혹입니다. 사자·호랑이·하이에나·독수리... 하늘과 땅의 사냥꾼들은 사냥한 먹잇감 중에서 가급적 내장부터 파먹습니다. 음식으로서의, 영양소로서의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요. 악어 사체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오찬을 시작한 검은대머리수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놈은 노련한 미식가입니다. 어디를 파먹어야 내장을 끄집어낼 수 있는지 능숙하게 파악하고 있었어요. 공략포인트는 총배설강(배설과 짝짓기 통로로 활용되는 구멍)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리 끝에서 내장이 끄집어져나올 때 ‘찌이이익’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네요. 아직 썩어문드러지기 전의 싱싱한 내장을 추르르르릅 목구멍으로 바로 넘깁니다. 이 내장을 시작으로 대머리수리는 악어 몸뚱이속으로 머리를 처박고 긁어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끄집어내 먹을 것입니다. 깃털대신 우툴두툴한 돌기로 덮인 민머리는 사체에 바글대는 각종 병균들로부터 검은대머리수리의 몸뚱이를 보호해줄 것이고요. 이 먹방의 주인공을 징그럽고 엽기적이라고 손가락질 해선 안됩니다. 대체로 대머리수리류를 보는 인간의 시선은 경멸에 가까웠습니다.
월트디즈니의 1호 만화영화 ‘백설공주’에서도 못된 마귀할멈의 조력자로 두 마리 대머리수리가 등장할 정도죠. 하지만, 이들 청소부가 없다면, 곳곳에 널려있는 죽은 사체에서 퍼지는 각종 박테리아와 세균이 인간 세상에게 어떤 해악을 끼쳤을지 모를 일입니다. 이들에게 썩은 사체에게 식욕을 느끼는 본능을 부여해준 조물주의 조화가 그저 신비로울 뿐입니다. 이들 덕분에 자연이 한결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이니까요. 대머리수리의 오찬 시그니처 메뉴가 된 된 사체의 주인공 악어는, 아마 번식철을 맞아 수컷들끼리 영역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동족에 의해 일격을 당하고 혼이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머리수리들이 아니라면, 썩어 문드러진 사체로 인해 강이 오염됐을 것이고, 그로 인한 파급효과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거대한 위협이 됐을 겁니다. 우리가 한낱 ‘사체나 파먹는 찌질한 동물’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대머리수리류들은 진정한 대자연의 수호신들입니다.
새들의 제왕인 수리·매 중에서도 대머리수리류(벌처)는 살아있는 먹잇감을 직접 사냥해먹는 수리류(이글)에 비해 몸집도 작고, 힘도 약하고, 겁쟁이 기질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요. 실제로 날카롭게 벼린 부리와 발톱,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수리류에 비해 대머리수리들은 벗겨진 두피, 퀭한 눈빛, 왜소한 몸집은 대조를 이루죠. 하지만 이들의 섭식은 대자연을 정화시키는 위대한 동력입니다. 그래서 지구촌에 골고루 퍼져있는 것이고요.
대머리수리는 크게 유라시아·아프리카를 말하는 구세계 대머리수리와 남북아메리카를 일컫는 신세계 대머리수리로 나뉘는데요. 겨울철이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독수리’는 구세계 대머리수리의 한 종류입니다. 신세계 대머리수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이름이 부여돼있습니다. 바로 ‘콘도르’죠. 넓은 의미의 콘도르는 남·북 아메리카에 분포하는 대머리수리류를 모두 통칭하는 개념이고요. 좁은 의미의 콘도르는 그 중에서도 콘도르라는 이름이 붙은 두 종류(안데스 콘도르·캘리포니아 콘도르)를 일컫는 말이죠. 이들 신세계 대머리수리들은 외모부터 구세계 대머리수리들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살기와 탐욕이 그득하고 우악스러운 집단 식사를 즐기는 구세계 대머리수리들과 달리, 덜 공격적이고 무리생활의 강도도 상대적으로 덜 하죠. 눈빛에는 살기대신 우수가 느껴지죠. 반면 썩은 고기를 섭취해서 제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만큼은 탁월합니다.
죽음을 파먹는 대머리수리들의 소화 체계는 늘 과학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막연히 아주 강력한 소화 효소를 분비할 것이라고 추측됐는데, 지난 2014년 덴마크 아르후스대의 라르스 한센 박사 연구팀은 보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개체수 조절용으로 미국 테네시주에서 야생동물 당국에 의해 포획·살처분된 검은대머리수리 26마리와 칠면조수리 24마리의 사체를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 대머리수리의 내장에 분포하고 있는 두 종류의 박테리아인 ‘푸소박테리아’와 ‘클로스트리디아’가 키 플레이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들 박테리아가 기능하는 대머리수리의 소화 기능은 다른 맹금류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썩어 문드러져가는 내장과 살점은 강력한 위산에 의해 흐물흐물하게 녹아들어가고, 알짜배기 영양분은 쭉쭉 뽑아서 피와 살에 기운을 북돋워주죠.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리들이 날카로운 발톱과 스피디한 날갯짓으로 무장한 사냥기술을 연마해갔다면, 대머리수리들은 어떤 극한상황에서라도 씹어 삼키는 것을 음식으로 체화할 수 있는 독특한 소화기술을 발전시켜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도져 흑사병급으로 지구촌을 휩쓸어도 이들은 끄떡없이 번성할 공산이 큽니다. 덕에 대머리수리들은 지금도 곳곳에서 죽은 사체들을 파먹으며 지구의 오염도를 낮춰주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스캐빈저라고 낮춰봤던 짐승들은 이렇게 깨끗한 지구를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태를 파악했더라면 월트 디즈니가 마귀할멈의 조력자 같은 악랄한 캐릭터로 대머리수리를 묘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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