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사법부 신뢰 회복 첫 단추
사법부 스스로 권위 무너뜨려
법·양심 따른 공정 판결 지켜
무너진 권위를 스스로 세워야
한 번이라도 법정을 본 경험이 있는가? 성당과 교회 예배당이 연상된다. 성직자의 예복처럼 법복은 법관의 권위를 상징한다. 법관은 상석에서 재판을 주재하고 좌·우측 검사와 변호인, 방청객과 참고인 모두 법관만을 향한다. 검사와 변호인이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법관 판단을 구하는 의식일 뿐이다. 이렇게 법관을 부각하는 구도와 행위는 결국 사법부 권위의 중요성을 인식해서다.
지역·이념·세대·젠더 등 각 구성원 간 갈등이 분출하고 있는 형국에서 사법부가 최종 해결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갈등은 쌓이고 임계점을 넘어서게 된다. 사회는 결국 만인이 투쟁하는 정글로 변한다. 외신이 전하는 내전과 테러를 겪는 다른 나라의 상황을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도 심리적 내전 상태에 돌입한 지 오래됐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유창훈 부장판사가 결정한 2건의 사건에서 권위가 실종된 사법부의 현주소가 드러났다. 지난해 9월 유 판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판사 규탄 문구가 적힌 근조화환이 서초동 법원 앞에 수십 개가 놓였다. 그를 조롱하는 현수막도 내걸렸다. 12월 송영길 전 대표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또 엄청난 비판에 시달렸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망했다”, “사법부는 죽었다” 등 비판글이 쏟아졌다. 법원 결정에 승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영 논리로 판사를 압박했다. 판사는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불쏘시개로 전락했다.
사법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2017년 8월 지명 당시 청렴하고 소탈한 인상으로 관심을 받았다. 16년 된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가족과 함께 서울로 향하는 모습에 ‘사법농단’이라는 불신 속에서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첫 출근도 파격적이었다. 2017년 8월 22일 관용차 대신 시외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대법원 청사로 출근했다. 그는 “31년5개월 동안 법정에서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며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여드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그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회 탄핵을 거론하며 후배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지만 이를 부인하는 거짓말을 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과하고 검찰 수사도 받게 됐다. 판사인 아들 부부가 대법원장 공관에서 함께 살았던 사실도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사법부 수장이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누가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 권위를 다시 세우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판결의 공정성, 그리고 당사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받더라도 법과 양심에 따라 법관이 판결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대법원장부터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상식과 도덕에 대한 일반인의 기대를 잃지 않는 데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법부 신뢰 추락에 대한 질문에 “전임 대법원장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잘한 점을 계승해서 사법부를 지키겠다”고 했다. 취임사에서는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단 한 건의 불공정한 사건 처리가 사법부 신뢰를 통째로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조 대법원장이 무너진 리더십을 바로 세우고 공정한 사건 처리를 독려해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를 다시 세우기를 바란다.
이우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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