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경찰의 스파이 수사가 불안한 이유
국정원 수사 역량 따라잡기 하세월 걸려
새해가 밝았다. 갑진년에 달라지는 것 중의 하나는 적을 이롭게 하는 스파이(spy)에 대한 대응체계다. 간첩 수사는 국가정보원에서 경찰로 이관되었다. 국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3년의 유예기간이 지나 새해부터 13만 경찰은 민생치안 임무에다 ‘안보경찰’ 기능이 추가되었다.
우선 21세기 간첩은 산에서 이슬맞고 새벽에 내려오는 고전적 의미의 간첩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 통전부에서 남파하는 파견 간첩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감소했다. 남한에서 좌경 사상에 심취한 자생 및 토착 간첩을 육성하는 신규 공작으로 전환했다. 확신범을 가장한 반정부 활동을 전개하니 심증은 가나 물증 확보가 어렵다. 합법적인 신분으로 국회 등 정치권에서 접근하는 직장인 간첩 스타일이다.
다음은 간첩 활동의 글로벌 특성이다. 자생 토착 좌경인사들은 중국과 동남아 제3국에서 접선하고 미션을 부여받는다. 최근 5년간 간첩의 64%가 외국에서 북한과 접선했다.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5년간 간첩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은 22명으로 제3국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피고인은 14명이다. 피고인들이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국가는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으로 18회에 달한다. 간첩의 국제화 경향은 경찰 수사가 직면하는 가장 큰 벽이다.
해외 접선 등 증거가 불충분하니 혹시 체포되더라도 단순 반정부 비판 활동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해외 활동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현지 정보기관과의 공조가 불가피하다. 경찰의 국제 공조 기관인 인터폴은 스파이를 잡는 데 나서지는 않는다. 해외 대사관에 주재하는 경찰 영사는 수백만 해외관광객들의 소매치기 사고를 처리하기도 힘에 부친다. 경찰과 정보기관은 대칭 기관이 아니라 정보협력은 한계가 있다. 해외 정보 인프라 부실은 안보 수사 사각지대를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경찰의 수사체계 미흡이다. 최소 3년에서 최장 10년에 이르는 간첩 수사를 지속하는 것은 현행 경찰의 승진 및 보직관리 체계에서 불가능하다.
좌경세력을 내사하고 소소한 증거를 수년에 걸쳐 채증해 가는 안보수사는 경찰 내 대표적인 비인기 보직이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은 태생적으로 간첩 수사를 위해 설립되었다. 국정원과 경찰의 조직문화는 상이하다. 간첩수사는 국정원 내에서도 기피부서일 정도로 업무가 고난도다.
김정은은 ‘핵무력을 동원해 남한 전 영토를 평정하겠다’고 새해 협박을 했다. 안보수사 무력화로 환호성을 지를 기관은 평양 통일전선부와 국내 좌경세력일 것이다. 지난 63년에 걸쳐 축적한 간첩 수사 역량은 하루아침에 전수되지 않는다. ‘스테가노그라피’와 같은 고도화된 암호는 휴민트(인적정보)를 통해서만 해독할 수 있다. 평양은 간첩 수사 이관 이후에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공작을 전개할 것이다. 동독 정보기관인 슈타지에 매수된 귄터 기윰이 연방 총리 빌리 브란트의 보좌관이 됐던 사건이 향후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기우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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