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프리퀄 같은 ‘길위에 김대중’…암흑의 시대 비추다
12·12 군사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크리스마스이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979년에 태어나지도 않은 젊은 세대가 뜨거운 호응을 보인 덕에 <범죄도시3> 이후 2023년의 두 번째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신군부의 등장에 분노하며 그 분노의 감정을 ‘심박수 챌린지’라는 놀이로 전환한 세대에게 <서울의 봄>은 되풀이돼서는 안 될 분노 유발의 역사를 확실히 인식하게 한, 의도치 않게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영화가 됐다.
‘진짜 정치인’ 통해 정치란 무엇인가 질문
2024년 1월10일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은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서울의 봄>의 프리퀄 같은 영화다. 물론 한 편은 극영화 또 한 편은 다큐멘터리로, 두 영화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렇지만 <서울의 봄>이 생략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길위에 김대중>은 꽤 도움이 된다.
잠깐 두 영화를 비교해보자. <서울의 봄>이 암흑시대 어둠의 폭주를 강조한다면, <길위에 김대중>은 암흑시대에도 꺼지지 않았던 불씨를 비춤으로써 이 땅의 정치적 자유가 어떻게 유린됐는지 이야기한다. <서울의 봄>이 제목과 달리 역사적 사실로서 ‘서울의 봄’을 생략하고 악의 탄생을 맹렬히 노려본다면, <길위에 김대중>은 ‘서울의 봄’ 이후 피로 물든 광주의 역사까지 아울러 민주화를 열망했던 한 정치인의 신념을 바라본다. 민주·자유·평화를 열망했던 정치인 김대중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국의 근현대사 반세기를 서술하는 <길위에 김대중>은 영락없이 김대중의 영화지만, <서울의 봄>은 전두환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이런 비교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두 영화를 나란히 붙여본 것은 민주화 이전 시대를 응시하는 두 영화가 민주화된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을 각성하게끔 한다고 느껴서다.
인물 다큐멘터리는 영화가 주목하는 대상에 대한 관심도나 호불호가 영화 자체에 대한 호불호와 연결되는 특성이 있다. 특히 특정 정치인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좋다. 박근혜와 이명박, 노무현과 문재인의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필관람 영화가 되지만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 진영에서는 ‘별점 테러’를 당하기 딱 좋은 영화가 된다.
하지만 <길위에 김대중>에는 인물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에서 두루 존경받는 어른이었다는 점은 차치하고서, 그러니까 김대중을 잘 알거나 모르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상관없이 영화는 더 큰 이야기를 깔고 있다. 이건 김대중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격동의 한국 근현대 정치사를 압축해놓은 영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유신과 군사독재까지, 김대중의 삶뿐 아니라 이 땅의 곳곳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영화는 외면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반민주적 쿠데타에 저항하며 정의의 편에 서려 했던 사람들의 역사도 함께 길어 올려진다.
<길위에 김대중>은 2013년 정진백 김대중추모사업회 회장이 김대중평화센터에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하고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승낙하면서 제작됐다. 영화의 태생 과정을 생각하면 인물의 좋은 면만 기념하는 영화일까 우려할 수 있지만, 민환기 감독은 ‘진짜 정치’를 하는 ‘진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1924~1987년, 암중모색의 김대중
<길위에 김대중>에서 만나는 김대중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서의 김대중도,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김대중도 아니다. 영화가 기록하는 시간은 그가 태어난 1924년부터 1987년까지, 무수한 고난을 헤쳐나가야 했던 암중모색의 시기다. 김대중의 정치적 수난사는 세 번의 대선 낙선과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사형수라는 요약으로 곧잘 설명되는데, 영화는 그가 겪은 고난 자체보다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돌파하는 뚝심 있는 한 정치인의 신념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인의 탄생이다.
1924년 1월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해운회사를 운영하며 젊은 사업가로 성공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공산주의에 대항하고 부패한 정치세력과 싸우기 위해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발을 들인다.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초반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1954년 민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 네 번째 도전인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처음 민의원에 당선된다. 하지만 당선 다음날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국회가 해산돼 의정활동은 하지 못한다. 1963년 목포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그는 정책 정치를 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경제성장이 거의 유일한 목표였던 시대, 그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라는 의제에 집중했다. 또한 “세계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가고 있다”며 반공사상이 아닌 화해와 단합을 강조했다. 1965년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협정의 득과 실을 따져 야당 의원으로선 이례적으로 협조했다. 여성인권 신장을 위한 목소리도 냈다.
그는 자주 논쟁하고 때로 타협했다. 그는 의회주의자였고 비주류였다. 그는 앞을 내다보는 정치인이었고 공부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런 김대중의 연설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구름떼처럼 연설장에 몰려들었다. 1971년 4월, 신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의 서울 장충단공원 연설이 유명하다. 이날 100만 관중은 대중경제론, 3단계통일론, 4대국안전보장론 등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며 정책선거를 주도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봤다. 그는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을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끝없이 길 위에서 대중과 눈을 맞춘 정치인이었다.
광주와 김대중, “사랑하는 승자”가 되기까지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김대중은 박정희의 유신정권과 전두환의 독재정권 아래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다. 1973년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바다에 수장당할 뻔했고, 1980년 군사재판에서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김대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비극이다. 1980년 5월17일 전두환의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자 광주 시민들은 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신군부는 이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시민들을 유혈 진압했다. 남산에서 신문받던 김대중은 뒤늦게 광주의 상황을 접하고 충격받는다.
영화의 후반부는 광주와 김대중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피 흘리며 스러져간 광주 시민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 당시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분노를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미국 망명을 끝내고 돌아와 1987년 5·18 묘역을 찾은 김대중이 묘지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쏟아낼 때도 관객은 도리 없이 슬픔에 포박되고 말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와 원한의 감정을 끌어안고 민주화투쟁을 계속한 김대중은 화해, 용서, 관용의 정치를 꿈꿨다.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은 옥중서신이 유명한데, 그중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항상 인내하고, 우리가 우리의 적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자. 그래서 사랑하는 승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영화는 1987년 광주를 방문하는 김대중의 카퍼레이드 장면으로 끝난다. 아마 이후의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에서 10년이 흐른 1997년 12월, 김대중은 제15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돼 이듬해 국민의정부를 출범시킨다. 김대중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권력을 필요로 했다.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민주권력을 원했다. 민주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에 국민을 존경했다. 생각하는 국민, 행동하는 국민이 민주주의의 탑을 쌓기 바랐다. 그래서 스스로 ‘행동하는 양심’이 됐다.
결국, 제대로 된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는 양심을 믿었고 국민을 믿었다. 자연스레 에이브러햄 링컨이 생각난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의 당선 연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신비한 기억의 화음이 다시금 우리 본성에 자리한 더 선량한 천사들의 손길을 받을 때 연방의 합창이 높이 울려퍼지리라 믿습니다.”(도리스 컨스 굿윈, <권력의 조건> 참조) 미국 남북전쟁과 함께 대통령 업무를 수행한 링컨은 전쟁으로 분열 중인 나라를 지킬 수호천사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우리 본성에 이미 자리한다고 말했다.
링컨의 또 다른 명연설 게티즈버그 연설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전진하는 민심을 믿었던 링컨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대통령이 되어 존경받고 있다.
<길위에 김대중>이 김대중의 생애를 복기하며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제대로 된 정치(인)가 이 땅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지 않아 국민이 정치를 냉소할 때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퇴보할 것이다. 앞뒤를 바꿔 국민이 정치를 냉소한다고 정치인이 정치를 똑바로 하지 않는대도 민주주의는 계속 후퇴할 것이다. 이제 그만 잃어버린 정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정치를.
이주현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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