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삶 보고…민주주의 뚝 떨어진 게 아닌 걸 젊은층서 느꼈으면”[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부산에서 연극을 중심으로 10년간 문화운동을 했다. 1995년 김성수 감독의 데뷔작인 <런어웨이>의 연출부 조감독을 하며 영화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화계에서 ‘투명한 존재’로 인식되는 독립영화·예술영화 방면에서 주로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사 이름에 ‘6411’이 붙었다. 2014년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는 <목숨>에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노무현입니다>(2017), <노회찬6411>(2021) 등 인물 다큐 영화를 여러 편 제작했다. 한국예술영화관협회 회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DJ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구현 위해 평생 일관되게 노력하고 실천
미 망명 때 정치인과 언론에 한국의 현실 설파 능력은 새 면모
DJ·노무현·노회찬 공통분모는 절차 존중과 결과 승복
지금 정치인들도 그것 지켜야 우리 사회가 건강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 한국 민주화의 역사였다. 오는 6일은 김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날이다.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이 오는 10일 개봉된다. 1987년 대선 출마를 앞두고 16년 만에 광주를 찾아가기까지 63년간을 담았다. 제목은 1980년대 초 777일간의 미국 망명 기간 연설 중 “나는 늘 길 위에 서 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착안했다.
영화는 최낙용 시네마6411 대표와 이은 명필름 대표가 공동제작하고, 민환기 감독이 연출했다. ‘어떤 김대중’일지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 총 1700시간 분량의 영상 자료를 검토했다. 그 결과, 최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의회주의자, 민주주의자라는 궤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하고 실천하신 분”이라고 한 줄로 정리했다.
누군가는 김 전 대통령이 그리워서, 혹은 1970·80년대를 추억하려고, 그렇지 않으면 현실 정치가 답답해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최 대표는 청년 세대가 많이 보기를 바랐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노력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회찬 전 의원을 다큐 영화로 제작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노회찬. 정치 역정이 다른 세 사람에게 공통분모가 있을까. 최 대표는 “절차에 대한 존중,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고 했다. 이는 현재 정치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최 대표는 “정부와 국회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지키지 않으면 일반인들에게 혼동과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가 열린 경기 수원역 내 영화관에서 진행됐다.
- 언제 제작을 시작했습니까.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4년 뒤인 2013년에 정진백 김대중추모사업회장이 이희호 여사(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허락을 받고 시작했는데 원하는 결과를 못 얻었죠. 제작팀도 떠났습니다. 2019년에 저희한테 연락이 왔었어요. 그때 이은 대표와 저, 민환기 감독이 남북 문제, 동아시아 평화 문제와 관련해 남북 탁구를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남북관계가 평창 올림픽 때는 가까워졌다가 이듬해 급전직하하는 바람에 북쪽을 포함한 취재가 막혀버렸죠. 누군가 한 번쯤은 김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가 해보자고 결정했습니다.”
- 애초에 김 전 대통령 100년을 맞춘 것은 아니었던 거네요.
“네. 훨씬 전에 개봉할 수도 있었죠. 그랬다면 이희호 여사(1922~2019)도 보셨을 텐데요. 어쩌면 100주년에 맞춰 개봉할 운명이었나 생각도 듭니다.”
- 기획부터 다시 시작했던 건가요.
“완전히 새로 시작한 겁니다. 대통령 재임부터 한반도 평화에 대한 얘기를 다루는 ‘평화주의자 김대중’, 대통령이 되기까지인 ‘민주주의자 김대중’ 두 가지로 기획했습니다. 원래는 ‘평화주의자 김대중’ 기획에서 만들어진 게 <길위에 김대중>입니다. ‘민주주의자 김대중’은 1997년 대선에 대한 얘기인데 직접적으로 선거를 다루고 있어 22대 총선 이후로 미뤄놨습니다. ‘평화주의자 김대중’을 만들다 보니 민환기 감독이 ‘앞부분이 없어 너무 맥락이 없어지는 것 같다, 일대기로 넓히자’고 해서 1편이 나오게 됐습니다.”
- 어떤 김대중을 그리고 싶었습니까.
“‘우리도 잘 모른다, 아는 것은 단편적’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습니다. 정해진 방향이나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죠. 그런데 결과물을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일관된 선택, 그에 대한 노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자료 조사를 하다보니 이분은 평생을 의회주의자, 민주주의자라는 궤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더라고요. <길위에 김대중>에도 나오지만 그분이 정치를 통해 이루려던 것들은 1971년 대선 공약에서 대부분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서민 경제, 지방자치제, 향토예비군 폐지, 4대국 보장론뿐 아니라 여성가족부 설립, 여성 인권 신장도 얘기합니다. 1971년에 이미 여성과 가족에 대한 개념을 가졌다는 건 굉장히 선진적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일관되게 평생에 걸쳐 있던 것 같아요. 그걸 구현하기 위해 삼권분립하의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거죠.”
-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출마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에서 그려진 것 같습니다.
“굉장히 고민했던 점입니다. 늘 하늘에 떠 있는 선생님이 아니라 땅에 내려와 있는 정치인으로 그리려고 감독이 노력했어요. 1985년 미국에서 귀국한 것은 구국의 일념 혹은 한국의 민주화라는 대의명분도 있었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으로서 타이밍을 놓칠 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얘기한 바 있고, 둘 다 나갔을 경우 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분이 왜 나갔을까 하는 게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16년 만에 광주에서 만난 이들의 눈빛과 태도 속에서 지더라도 나갈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게 아닐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저런 여망을 안고 출마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라고 추론한 것이죠.”
- 김 전 대통령의 삶을 한 줄 평으로 정리한다면.
“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일관되게 노력하고 실천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영화에서 관객들이 유심히 봐줬으면 하는 장면이 있습니까.
“미국에서의 활동입니다. 1982년 12월 망명해 1985년 2·12 총선 사흘 전에 돌아올 때까지 777일 동안 미국에 계셨죠. 당시 대한민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아시아에서 이름 없는, 그것도 야당 정치인이 와서 2년 만에 미국의 유력 정치인과 언론에 한국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파해내는 능력과 노력을 새로운 면으로 봤으면 좋겠습니다. 1987년에 전두환이 제2의 친위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설도 있었는데 일어나지 않았던 주요 이유를 영화에서는 5·18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한편으로 미국이 용납하지 않겠다는 명시적인 경고가 있었을 것이고, 망명 시절 쌓은 미국 내 인맥이 보이지 않게 작용했다면 굉장히 유의미한 기간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2시간 분량에 담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까.
“개봉 영화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분을 많이 다루지 않아요. 3시간짜리인 최초 편집본에서는 4·19를 둘러싼 이승만의 역할, 5·18 못지않은 유혈 사태도 있었는데 앞부분이 너무 늘어져서 줄였는데 아쉽습니다. 1970년대 상황에선 문화사적으로 청년들의 저항 방식을 한대수와 김민기의 음악과 노래로 넣어봤었어요. 두 사람의 노래는 당시 청년들이 박정희의 폭압 정치 안에서 나름대로 문화를 만들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역시 전체 분량 때문에 빠졌습니다.”
- 시사회를 찾는 세대는 어떠합니까.
“지역별로 조금 다릅니다. 호남·광주·목포에 가면 어르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서울·수도권은 20대도 꽤 있어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사형수까지 갔던 어떤 정치 지도자와 이름 없는 수많은 민주시민들의 피와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20대, 30대들이 영화를 보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김 전 대통령 탄생일인 1월6일 전국 13개 극장에서 20대가 되는 2004년생 2400명을 초청해 무료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100주년 생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아요.”
- <서울의 봄>은 12·12의 9시간을 다루는데, 그 앞뒤 얘기가 뭐냐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길위에 김대중>을 <서울의 봄> <택시운전사> <1987>의 프리퀄(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이라는 얘기도 하더군요. 그 흐름에 이어서 같이 봐준다면 너무 고마운 일이죠.”
- <서울의 봄>의 흥행이 <길위에 김대중> 흥행에 도움이 될까요.
“제가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입니다. 제 사부가 만든 영화라서 더 감격스러운데, 일단 장르적인 영화적 규칙에 충실하게 잘 만든 영화입니다. 선악 구도가 명확한 속에서 9시간을 상승과 하강의 리듬을 조절하면서 영화적 언어를 굉장히 원숙하게 연출했어요. <서울의 봄>의 시대적 분위기가 우리 영화에도 이어지니, 정치에 관심 없던 분들도 ‘더 확대된 이야기를 보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극장들한테도 <서울의 봄>도 되는데 우리도 될 거라고 설득할 수도 있고요(웃음).”
- <노무현입니다> <노회찬6411> 등 정치인 다큐 영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닙니다. <노무현입니다>를 하면서 제가 관심 있었던 노 전 의원은 꼭 하고 싶었어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들의 어떤 정책이나 철학을 구현해 볼 기회를 가졌는데 노 전 의원은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다큐 영화를 제작하면서 당시 얘기를 들으면 ‘내가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이 이랬었구나’라는 식으로 공부가 많이 돼요. 5·18 시민군, 노사모, 진보정당 활동가들도 그렇고, 역사에 이름도 남지 않을 분들이 평생을 걸고 추구하는 것들이 진정성으로 다가올 때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게 다큐멘터리 재미인 것 같습니다.”
- 정치인 다큐 영화는 개봉 시기를 두고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노무현입니다>가 그렇게 오해될 수도 있었죠. <노무현입니다>는 2016년에 기획할 때만 하더라도 2017년 노 전 대통령 8주기에 맞춰 개봉하려고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데, 당시에 선거가 없었고 정치 일정에 맞춘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창 완성될 즈음 촛불이 터지고 대선이 치러지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선 전에 개봉하라고 얘기했어요. 한 명이라도 더 오지 않겠냐고 흥행 측면에서 말한 거죠. 저는 반대했고, 대선이 끝난 뒤인 5월25일 개봉했습니다. 이번 영화도 김대중 100주년에 맞춰 진행한 것이지,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김대중·노무현·노회찬은 정치 역정도, 정치적 성취도 다릅니다. 이 세 사람이 연결되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민주주의인 것 같아요. 노 전 대통령도 소수파였다가 다수파가 되지만 대통령 재임 중 하고 싶은 일도 여론이나 국회 상황 때문에 포기한 게 많아요. 수도 이전, 대통합(대연정)이 그랬죠. 노 전 의원도 민주노동당의 실제 산파였지만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뒷자리에 갔었고, 진보정당 내에서의 흑색선전도 반박하지 않고 수용합니다. 절차와 과정에 철저했던 것이죠. 김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요. 각기 스타일이 달랐지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존중, 과정과 결과에 대한 승복은 세 분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지금의 정치에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보시는지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그걸 지키지 않으면 일반인들에게는 혼동과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그 기준이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지금 손해를 보더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앞으로 다큐로 만들고 싶은 정치인이 있습니까.
“정치인보다 예술가들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조각가 한 분의 삶을 준비하고 있고요. 늘 생각하는 게 김민기 선생님인데 본인이 워낙 싫어해요. 김민기라는 분도 일관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분은 돈 안 되는 길을 의도적으로 걸어간다고 본인 스스로 얘기하잖아요. <지하철 1호선>이 잘되고 있을 때 어린이 연극을 하셨어요. 평생 노래하는 사람, 연극하는 사람이라는 걸 지키신 거죠. 한 번도 곁눈 두지 않고 일관되게 걸었던 동력은 뭔지, 고집인지 아집인지 철학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흥미가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시고 했으면 좋겠는데….”
- 윤석열 대통령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소재로 어떨까요.
“굉장히 드라마틱한 히스토리를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검사 시절,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재임 시의 일들이 그러하죠. 통상적인 정치인의 성장 과정 속에서 대통령이 되신 분은 아니잖아요.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상당히 흥미로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 나옴직한 삶이잖아요.”
- 다큐멘터리 영화는 얼마나 많이 제작되고 있는지요.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가 처음 영화관에 개봉된 건 2005년, 2006년쯤입니다. 당시 1년에 한 편 정도였는데 2009년 <워낭소리>가 개봉될 때는 연간 10편 정도, 최근에는 연간 30편가량 됩니다.”
-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지만 잠재력이 있습니다. 2022년 다큐멘터리의 칸영화제라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IDFA)’에 한국 감독의 작품들이 국제 경쟁에 출품되고 초청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도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와 ‘EBS 국제 다큐 영화제’가 열립니다. 지원과 투자가 이뤄진다면 극영화처럼 세계로 쭉쭉 뻗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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