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탓에 여성 고용률·경제활동참여도 낮다는 ‘새빨간 거짓말’

이창준 기자 2024. 1. 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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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2030 여성 고용·출산 보장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
독일의 경우 출산 여성 친화적 노동 정책으로 여성경제활동참가율과 합계출산율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사진은 독일의 출산 후 영유아 검진 모습. 사진 신혜광·이은혜씨 제공
인구 감소 속 경제활동 인구 유지 위해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 방지 필요
일·가정 양립 정책 펼친 유럽, 2000년 이후 여성 고용·출산 정비례 개선
한국도 모성보호를 기초로 한 성평등 노동과 재정 지원 정책 등 마련 촉구

흔히 여성 고용률이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남성에 비해 낮은 원인을 출산에서 찾곤 한다. 취업 후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할 시점에 출산을 하면 경력단절이 생기고, 또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 역시 부담을 느껴 사원을 채용할 때 상대적으로 남성을 더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근 국내 출생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고용 안정성이 인구 감소세를 막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여성이 고용시장에서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취업 이후에도 정부와 기업이 여성의 고용 유지에 더 신경을 기울이면 장기적으로 출생률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29일 이 같은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 여성 경제활동 늘수록 출생률도 높아져

전윤정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표한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출산이 여성 고용에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성 고용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수록 출생률도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조사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례를 들었다. 보고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티아스 돕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돕케 교수는 OECD 국가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따라 상위 그룹, 중간 그룹, 하위 그룹으로 나눴는데, 상위 그룹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특히 1980년대를 넘기며 뚜렷해졌다. 돕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OECD 국가들 중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국가는 합계출산율이 낮았는데, 2000년에는 합계출산율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정비례하는 양상으로 바뀌었다.

보고서에선 유럽 중심의 OECD 국가들은 출산 이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자 가족 정책과 일·가정 양립제도를 젠더중립적으로 재편하거나, 노동시장 차별구조를 완화하고 여성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독일의 경우 이 같은 변화가 두드러졌다. 독일은 1990년대 통일 이후 출생률이 급감해 1994년 합계출산율이 1.24명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가족 및 인구 정책의 영향으로 출생률은 반등하기 시작해 2015년에는 1.50명을 넘어섰고, 2021년에는 1.58명을 기록하는 등 최근까지도 꾸준히 늘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그 결정적 원인을 출산 여성에 친화적인 독일의 노동환경에서 찾았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을 통해 단기 일자리 위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였다. 그러나 이후 여성이 종사하는 단기 일자리가 소득 수준이 낮고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자 ‘최저임금법’ ‘임금구조 투명성 촉진법’ 등 지속적인 제도 개혁으로 여성의 고용을 유지하고 성별 임금 격차도 줄여나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의 여성 고용률은 2012년 71.9%였던 것이 2021년 74.4%까지 오르는 등 합계출산율과 비례해 지속 상승하고 있다.

■ 여성에겐 여전히 기울어진 고용시장

지난해 3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한 0명대 국가다. 통계청은 지난달 장래인구 추계에서 국내 합계출산율은 내년 0.65명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에서는 국내 여성의 열악한 고용 상황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노동시장 진입 시기인 20~30대를 보면 여성의 진출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정성이 크고 남성과 고용 및 임금에서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30대 남성 고용률은 89.1%에 이르렀는데, 같은 연령대 여성 고용률은 64.4%로 24.7%포인트 차이가 났다. 이마저도 꾸준히 차이가 좁혀진 것으로 10년 전인 2012년 남녀 고용률 격차는 35.7%포인트에 달했다. 성별 정규직·비정규직 규모 차이도 컸다. 지난해 8월 기준 남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9.8%였던 데 비해 여성 비정규직 비중은 45.8%에 달했다. 전 조사관은 “여성은 연령에 따라 입직과 퇴직, 재입직이 일어나면서 고용단절이 발생하고 한시적 시간제 일자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고용과 출산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성평등한 노동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정책과 전략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여성이 노동시장 진입 과정에서 명시적·묵시적으로 겪는 차별적 관행을 개선하고, 일터에서 모성으로 인해 겪는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보고서에선 공공부문이나 대기업에만 실효성 있는 일·가정 양립제도가 운영되는 점도 지적했다. 보고서에선 “기업의 규모, 고용 형태, 종사하는 직무나 업종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육아휴직, 출산휴가, 부모급여, 아동수당, 가족수당 정책 등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확대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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