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도 높은 한국 증시…조정 때마다 담으며 실적 가시화 기다려라[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불안하고, 좀 더 열심히 할걸 하면서 후회한다. 과거에 출제되지 않았던 내용이라 건너뛰면 꼭 거기서 문제가 나오고, 시험 시간에 쫓겨 답 표기를 한 칸 미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운이 좋아 노력한 것보다 시험 성적이 더 나올 때도 있지만, 대개는 실수와 노력 부족으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처음 썼던 답을 바꿨다가 틀리면 후회의 감정은 배가된다. 처음에 1번 정답을 선택했다가 3번으로 고쳐서 틀리면, 처음부터 3번 오답을 선택했을 때보다 후회의 감정이 더 크다. 2005년 뉴욕대학의 사회심리학자 저스틴 크루거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다.
이 실험에서 한국 증시를 떠올리는 이유는 한국 증시의 지난 패턴 때문이다. 한국 증시는 난도가 높다. 1989년 3저 호황기에 코스피는 1000포인트를 넘어섰지만, 이후 1990년대 내내 1000포인트를 넘지 못했다. 외환위기를 이겨내고, 2000년대 들어서자 중국 특수에 힘입어 코스피가 2000포인트를 극복했지만, 이후 10여년을 박스권에 머물다가 2017년에 가서야 한 단계 올라섰다. 2020년 코로나 내구재 특수 이후 한국 증시는 3000포인트를 넘어 전진했지만, 이후 주가는 2200포인트 전후를 저점으로 변동성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추세적 상승 기간에 비해 박스권 시기가 길다 보니 정답지를 수정하는 경우가 잦을 수밖에 없다. 약세를 전제로 위험관리를 하면 상승장이 찾아오고, 강세를 전제로 공격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 조정장으로 전환된다. 한국 증시는 추세적 상승도 하락도 아닌 박스권이 긴 패턴이 반복되어왔다. 투자가 엇박자 날 때 생존하기 힘든 게 한국 증시의 슬픈 현실이다.
한국 증시는 미국에 비해 박스권에 자주 머문다. 무엇 때문일까? 지수를 구성하는 기업들의 이익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미국 증시는 내수 비중이 높고, 그러다 보니 이익이 글로벌 경기보다 국내 수요에 연동된다. 하지만 한국 증시는 전적으로 수출 경기에 의존한다. 글로벌 경기가 좋을 때 이익은 급증하지만, 경기 후퇴기가 돌아오면 한국 기업들은 고스란히 이를 반영한다. 2009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공포 전에 한국 증시 조정폭이 가장 깊고, 위기에서 벗어날 때 한국 증시가 제일 앞에 달려가는 배경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이 더딘 것이 한국 증시가 박스권 덫에 갇히게 되는 두번째 이유이다. ROE가 높아지려면 분자인 이익창출 능력을 높이거나, 분모인 자본의 규모를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줄이면 된다. 미국 증시를 추세적으로 이끌어간 동력은 이익의 변동성이 낮은 상태에서 이익이 꾸준히 늘고, 무엇보다 주주 가치를 우선하는 투자 환경이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이와 다르다. 주주 가치보다 대기업 집단의 오너 가치가 우선시되다 보니,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일들이 빈번하다. 분할을 통한 기존 주주의 권리 훼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증시는 시장 전체 방향을 읽어내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 성장기의 성격에 따라 주도주가 나왔다 사라지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투자자들이 오답을 체크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2000년대 중국 특수가 글로벌 경기를 이끌 때는 중국 노출도가 높은 기업들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고, 코로나 위기 이후 내구재 특수 기간 중엔 IT가 전면에 나섰고, 미·중 갈등이 심화된 2023년에는 2차전지, 온디바이스AI 관련 기업들이 상승을 이끌었다. 코로나 이후 급등장을 경험한 투자자들은 ‘매수 후 보유 전략(buy & hold)’을 금과옥조처럼 마음에 새겨왔지만, 2000년대 중국 특수에 힘입어 성장했던 아모레퍼시픽은 여전히 부진하고, 코로나 이후 ‘주린이’들의 최선호 종목이었던 삼성전자는 여전히 10만전자를 회복하지 못했다.
과거 시험을 떠올리며 오답노트를 작성해봤다. 박스피 내에서 ‘매수 후 보유 전략’보다 ‘하락 변동성 매수(buy the deep)’ 전략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될 것 같을 때보다, 뭔가 불안할 때, 국내외 이슈로 주가 조정이 뒤따를 때 주식 비중을 늘리자. 큰 위기로 치닫는 가능성이 낮으니, 악재(bad news)에 위험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또 하나 글로벌 경기 모멘텀이 강력하지 않을 때 한국 증시는 박스피에 들어선다. 주가가 앞서가고, 기업 실적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분기별 실적 시즌에 앞서간 기대와 기업 실적의 괴리가 좁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바로 그때가 투자에 나설 정답의 시기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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