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법, 사법부 무력화 법안 무효화…네타냐후 ‘궁지’
하마스와 전쟁 중 국내 갈등 다시 불붙을 가능성 커
이스라엘 대법원이 1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사진)와 극우 연정이 지난해 7월 강행 처리한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대해 파기 결정을 내렸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차별 폭격으로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진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궁지에 몰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레츠 등 이스라엘 매체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해 7월24일 의회(크네세트)가 가결한 ‘사법부에 관한 개정 기본법’을 무효 처리했다. 대법관 15명 중 과반인 8명이 기본법 무효화에 찬성했고, 7명은 반대했다. 대법원은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문제의 입법이 민주주의 국가인 이스라엘의 기본 성격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무효로 처리한 기본법은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중대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걸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행정부 결정이 법과 관례, 국민 정서 등에 반한다고 여겨질 때 대법원이 합리성 판단 기준을 적용해 이를 뒤집을 수 있도록 해왔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2022년 12월 취임 이후 탈세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극우 성향 아리예 데리 샤스당 대표를 내무 및 보건장관으로 임명했다가 이듬해 1월 대법원 명령에 따라 해임한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와 보수 연정은 국민이 선출한 행정부의 결정을 공무원인 법관이 제지하는 행위가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법원의 합리성 판단 기준을 삭제하는 사법개편을 추진해왔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스라엘 건국 이래 역대 최대 규모로 벌어진 바 있다. 지난해 1월 시작된 시위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직전까지 10개월간 이어졌으며, 하루 시위 참가자가 최대 50만명에 달했다.
이스라엘 여당과 연정 측은 대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사법부 무력화 법안 설계자인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힘의 균형을 위해 분리된 모든 권한을 법관들이 독점하려 한다”며 “이는 수백만 시민의 목소리를 빼앗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대표로 있는 집권 리쿠드당은 대법원 결정이 전쟁 중인 이스라엘 국민의 단합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야권은 환영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지난 1년간 이스라엘을 분열시킨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매듭지었다”고 말했다. 전시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통합당 베니 간츠 대표도 “전쟁 직전 우리는 극단적인 분열을 겪었다”며 “우리는 대법원 결정을 존중해야 하며, 이번 논쟁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개편 무산에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무리한 사법개편 추진으로 분열된 국론이 하마스와의 전쟁을 계기로 봉합되는 듯 보였지만, 결국 가려졌던 균열이 노출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벌이는 중에 사법개편으로 인한 심각한 국내 갈등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BBC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도 이번 대법원 결정이 전쟁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여론전에 나섰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 사회 균열과 군의 준비 상태가 하마스 기습 이유”라며 사법개편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전쟁 발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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