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유머로 무거움 덜어내고… 삶의 세계 증언

김용출 2024. 1. 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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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이때 절뚝거리며 회관으로 오던 다른 할머니가 달려와 그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허리를 받치고 오던 금례 할머니마저 아이 안 듯 그를 일으켜 세운다.

중견 시인 김해자(사진)가 시골마을 노인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광덕 부르스'를 비롯해 56편을 시를 엮은 여섯 번째 시집 '니들의 시간'(창비)을 들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해학과 유머가 시집 곳곳에 출몰, 과도한 무거움으로 침전하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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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시집 ‘니들의 시간’ 펴낸 김해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찐 감자가 들려 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는 엉금엉금 겨우 계단을 오르려 한다. 이때 절뚝거리며 회관으로 오던 다른 할머니가 달려와 그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 허리를 받치고 오던 금례 할머니마저 아이 안 듯 그를 일으켜 세운다. 순간 블루스를 추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 초가을 저녁 무렵, 마을 회의를 앞둔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들의 정겨운 모습에서 시가 내려온다.

“눈꺼풀이 가물가물 내려오는/ 다 늦은 저녁에 무신 마을 회의를 간다고/ 단내 폴폴 나는 감자 쪄 들고/ 우정인 어매가 납작 엎드려 계단을 오르는디/ 엉거주춤 팔 하나 쭈욱 뻗어 계단에 올리고/ 팔 하나 납작 내려 다리 움켜잡고/ 흔들흔들 다리를 마악 들어 올리는디/ 어라, 마침 건너편에서 절뚝절뚝 걸어오던 종분씨가/ 후다다닥 달려와 우정인 어매 엉덩이를 살짝 받쳐 드는디/ 얼레, 허리에 두 손 받치고 뒤로 자빠질 듯 다가오던/ 금례씨가 넘어진 아이 안 듯 어매를 일으켜 세우는디/ 얼쑤우, 허리에 기합 넣고 으드드득 일어서는디/ 아싸아, 흙 묻은 손가락 탁탁 터는디/ 감자 껍질은 툭툭 벌어지는디/ 마침 감나무 가지에 걸린 저녁 노을에/ 풋감도 은근슬쩍 물들어가는디”(‘광덕 부르스’ 전문)
중견 시인 김해자(사진)가 시골마을 노인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린 ‘광덕 부르스’를 비롯해 56편을 시를 엮은 여섯 번째 시집 ‘니들의 시간’(창비)을 들고 돌아왔다.
한국 민중시의 도도한 물줄기를 이어온 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온몸으로 쓰는 시세계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들며 “삶과 세계의 비극을 증언”한다. 그럼에도 해학과 유머가 시집 곳곳에 출몰, 과도한 무거움으로 침전하는 것을 막는다. ‘월식’은 월식을 보면서 죽음이 아닌 희망을 택한 노인 이야기를 향토어와 해학으로 그린 시편.
“자식 놓쳐불고 죽을라고 밤에 강으로 갔는디 컴컴항게 암것도 뵈지 않으니께 여가 거근지 거가 여근지 모르겄더라고. 일단은 들어갔어. 근디 허리까지 차니께 몸이 붕 뜨더라고. 막 뜨니께 으디를 붙잡을 디도 읎구, 죽으러 드갔는디 죽어야 하는 건지 살아야 되는 건지, 이 꼴로 으디를 가나, 내 맴만 젖었다니께.//… 저승길 밟은 맴으로 살아보자, 어디까정 갈지 모르겄지만 살다보믄 무슨 수가 있겄지. 그냥 살기로 혔어. 아프다 아프다 해도 죽게 아프지는 않으니께 살아야지. 나 죽네 나 죽네 하믄서도 세상은 돌아가잖여.// 야아 달이 살아났네/ 저기 좀 봐 달이 나오잖여/ 나 달이다, 허고 일어났잖여”(‘월식’ 부문)

1961년 신안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란 김 시인은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축제’, ‘무화과는 없다’, ‘집에 가자’, ‘해자네 점집’ 등을 펴냈다.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전태일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구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김용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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