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의 말의 힘] 말의 힘과 말의 일
말의 힘은 말의 일에서 드러난다. 키케로의 말이다. “사람의 모임과 결합은 가장 잘 유지된다. 누가 되었든 가장 가까운 정도에 따라 그에게 가장 많은 좋음이 주어질 때에. 하지만 사람을 연대하고 결합하는 본성의 원리는 더 높은 차원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사회성에서 드러나는데, 그 밧줄이 이성이고 언어이다. 가르치며 배우고 대화하며 토론하고 판단한다. 이것이 사람을 서로 묶고 결합시킨다. 본성의 어떤 사회성 덕분이다. (…) 들짐승도 용기를 가지고 있지만, 사자나 말이 정의, 평등, 좋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다. 이성과 언어를 결여하기에.”(<의무론> 1권 50장)
“가장 가까운 정도”와 “보편적인 사회성”이 대별된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혈연, 지연, 학연의 울타리 너머에 보편의 사회성이 강조된다. 해명인즉 이렇다.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는 혈연 중심의 부족 국가를 존속시켜 준 정신으로는 더 이상 지탱조차 할 수 없었다. 해결책 중 하나가 로마의 성숙을 위한 ‘말의 힘’의 활성화였다. 관계의 친연성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보편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보편에의 호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는데, “누가 되었든, 어디에서 왔든, 자격을 갖춘 사람은 모두 로마 시민으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로마 시민 모두의 관심사였고, 이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교실, 법정, 광장, 술집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방인으로 로마에서 살아가기 위해 ‘정의’, ‘평등’, ‘좋음’에 대한 이해와 논쟁은 이미 생존의 필요조건이고 생활의 충분조건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로마를 보편문명국가로 만든 조건이었을 것이다. 강력한 군사력도, 학자의 이론도 아니었다.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어와 이성을 이용하는 보편의 설득력에 의지하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처지, 즉 ‘인간 조건(conditio humana)’이 로마를 보편문명국가로 만들었을 것이다.
적어도, ‘정의’는 혈통을, ‘평등’은 고향을, ‘좋음’은 출신과 신분과 학교와 국적을 따지지 않았기에. 남의 이야기일까? 정의와 공정에 대한 시비는 우리의 핵심 문제이므로. 하지만 우리도 결국은 ‘정의’, ‘평등’, ‘좋음’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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