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난민과 이민에 장벽 쌓는 유럽

기자 2024. 1. 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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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0일 유럽연합 이사회와 의회는 난민 심사와 회원국별 난민 배분 방법을 정한 ‘이민·난민 협약’을 타결했다. 이번 협약엔 사전 심사 규정 강화를 비롯해 신속한 자격 심사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유연함을 갖춘 의무적 연대’로 불리는 ‘이주·난민 관리 규정’이 가장 눈에 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 중 일부에 난민 유입 부담이 발생할 때 다른 회원국이 일정 수의 난민을 나눠 받아들일 수 있다. 난민을 안 받을 경우, 이들을 송환하는 대신 거부한 난민 수에 따라 유럽연합 기금에 비용을 내야 한다. 유럽연합 이사회는 이 규정을 통해 아프리카, 중동과 가까운 회원국인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의 난민 유입 부담을 덜고 다른 회원국으로 이를 분배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번 협약을 통해 난민 심사 속도를 높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이주·난민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도를 보여줬지만 난민 승인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회원국 각자가 재정적인 책임을 지고 난민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난민에 대한 벽이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한편 유럽 각국도 이민과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게 쌓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19일 이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는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성년이 되면 자동으로 프랑스 국적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 속지주의를 폐지하고 앞으로는 16~18세 때 정부에 따로 국적 취득을 신청해야 한다. 이밖에도 가족 이민과 학생 이민 조건을 강화하고 2012년 폐지한 불법 체류자 벌금 부과, 입국 금지도 되살리기로 했다. 영국에서도 최근 비자 발급 규정을 강화한 비자법을 개정하여 이민자 수를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현 영국 내무 장관인 수엘라 브래버먼은 ‘반이민’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이민자들을 영국을 위협하는 ‘허리케인’으로 묘사하며 더욱 강력한 이민·난민 관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밖에도 최근 스웨덴,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에서는 고조된 반난민 정서로 인해 정치지형에 변화가 생겨 극우 정당들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에선 반이민 정서가 거세지고 있지만, 프랑스 국제경제연구센터(CEPII) 연구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 중 약 3분의 2는 필수 업종(보건의료, 농업, 교통 등)에서 이민자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탈리아, 영국, 독일, 북유럽 국가들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필수 업종 중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청소, 농업 등)를 살펴보면 이민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들 국가들은 이민자 통합 문제와 자국민 우선주의 등을 이유로 이주·난민에 대한 벽을 높게 세우기 시작했지만 자국민이 기피하는 일자리에서 이민 노동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주·난민 문제의 아이러니함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저출생·고령화 문제 해결 방안으로 이민청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이민과 난민 유입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국가들의 경험과 고민, 정책 등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앞으로의 장기적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민자의 노동시장 내 활용과 통합 문제 가운데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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