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거리두기] 과거를 잊어야 미래가 보인다
새해가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과거를 잊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기후변화를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싶다면, 우리는 정치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산적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2024년 새해에는 지구상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국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70개국 이상에서 약 20억명이 투표소로 향한다고 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을 소망하지만, 그 전망은 오히려 흐릿하고 암울하기까지 하다.
2024년 안팎에서 치러질 두 선거는 특히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단연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선거인 미국 대선은 그 결과에 따라 세계 정치를 뒤흔들 것이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입후보 자체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만약 그가 승리한다면, 그 결과는 세계와 민주주의에 재앙이 될 것이 확실하다. 물론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4월 총선이다. 미국 못지않게 극단적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에서 이 선거가 우리를 좀 더 통합된 미래 사회로 이끌지, 아니면 해로운 양극화를 더욱 강화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정치가 더욱 걱정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이 정치를 걱정해야 한다면 그 국가는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며, 이 국가는 이 많은 정치인으로 인해 파멸해도 할 말이 없다.” 희망이 있는 미래 정치를 꿈꾸는 새해에 떠올린 니체의 말이다. 우리는 정치인을 존경하기는커녕 혐오하거나 증오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은 지도자로 여겨졌던 사람도 정치에 발을 들이는 순간 ‘더러운 정치인’으로 탈바꿈한다.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고, 비방과 욕설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정치적 무기처럼 들고 다니고, 비전보다는 비난에 익숙한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 일반인들은 정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들의 일차적 관심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권과 이를 보호하는 당권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 미래보다 과거가 넘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권력투쟁으로 점철된 과거를 극복하고 통합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가? 대화보다는 대결, 협상보다는 투쟁, 이념보다는 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재의 정치문화가 사악해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의 정치에는 ‘미래’보다는 ‘과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되는 과거 정치적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적대시한다.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하고 서로에게 총질하는 데 익숙한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적 전사와 저격수만 양산했을 뿐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창조적인 지도자를 생산하지 못하였다. 어느 쪽도 ‘네가 나를 살리면 나도 너를 살린다’는 상생의 윤리를 감히 먼저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가 너무 과거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를 올바로 파악하고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과거를 잊은 민족과 국가에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과거는 미래를 창조할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말한 것처럼 진정한 역사학자는 미래를 뼛속에 품어야 한다. 미래가 없는 과거 논의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일 뿐이다. 니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의 과잉은 살아 있는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말한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 과거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잊어야 비로소 미래가 보인다. 거대 야당 단독으로 처리한 ‘쌍특검법’과 윤석열 대통령의 반복적인 거부권 행사가 지배하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정쟁의 과거’를 잊고 ‘미래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취임사는 톺아볼 가치가 있다. 쌍특검법을 총선용 악법이라고 비난하는 국민의힘이 당을 쇄신하고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고, 그는 여의도 사투리가 아니라 나머지 5000만명이 쓰는 문법으로 낡은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취임사에도 미래보다는 과거가 너무 많이 넘실거린다. 그는 “좋은 나라 만드는 데, 동료 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지만, 그런 삶이 실현될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은 별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지극히 간단하고 분명하다. “운동권 특권 세력의 폭주”를 막는 것이 제1 목표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시각에 따르면 현재 국회 다수당은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범죄자 집단이다. 운동권 특권 세력이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혐오와 증오로 점철된 과거의 정치가 연상될 뿐 통합의 새로운 미래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수사학은 처칠과 서태지를 잘 버무린 ‘문체’에서 조금 신선할 뿐 그 밑에 깔린 정치적 ‘문법’은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국민 전체를 대변한다고 하면서 그 국민의 상당 부분이 지지하는 정당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 만드는 것은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의 낡은 문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법을 따르면 ‘국민의힘’보다 ‘국민’을 우선시한다는 ‘선민후사(先民後私)’는 진정성을 잃고 결국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말장난으로 전락하게 된다. 서로를 적폐 청산의 대상이나 반국가세력으로 만드는 이분법적 과거의 문법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정치인이 X세대 또는 30, 40대의 젊은 세대로 바뀌어도 우리 정치는 결코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하지 못한다.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꾼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의 가사를 인용해도,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면 새롭게 강조하려는 ‘영 라이트(Young right·젊은 보수)’는 환상에 머무를 것이다.
과거와 싸우고 과거를 정복해야
우리가 미래를 바꿀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과거와 싸우고, 과거를 정복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힘이 강할 때만 과거의 것 중에서 무엇이 기억할 만한 것이고, 보존할 만한 것이고, 위대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과거는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의 힘이지, 과거의 세력으로 매도된 특정 집단이 아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말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위대한 대한민국과 동료 시민들은 그것보다 훨씬 나은 정치를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상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려고만 하는 수구 꼴통을 청산하거나 이념에 경도되어 자신의 잘못도 정당하다고 우겨대는 운동권 세력을 제거한다고 과거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산업화와 민주화의 자식이기 때문에 과거의 과실을 비판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와 싸우려면 화살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가 모두 과거의 자식인데 화살로 상대방만을 겨냥하는 것은 진정한 비판도 성찰도 아니다. 도덕적 우월성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여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만이 특권 세력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될 때도 국가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익에 매진한 보수 엘리트 세력은 더욱 공고한 기득권 세력이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이 기득권 세력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시장까지 역임한 사람이 빌라 전세에 산다고 특권층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산업화 시대에 민주화 세력이 억압받고 탄압받은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 위선의 특권 정치로 우리 사회를 분열시킨 것도 ‘사실’이다.
진정으로 과거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을 통합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민주적인 것이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하면서도 민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똑같이 기득권 세력이 된 거대 양당이 서로 특권 정치를 한다고 손가락질한다. 정말 웃기는 비극이다.
이 비극의 막을 내리려면 우리는 이제 과거를 잊어야 한다. 어느 정당이 과거의 늪에서 빠져나와 더 많은 미래를 보여주는지 지켜봐야 한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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