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진, 도시가 통째 서쪽으로 1.3m 밀려났다
모두가 떠난 유령마을, 남은 건 폐허뿐이었다
자위대원 “도로 모두 붕괴, 위험하니 돌아가라”
2일 오후 4시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중심부로부터 인근 와지마시(輪島市)로 향하는 249번 국도는 중간이 땅으로 꺼져 끊겨 있었다. 전일 오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강진으로 도로 곳곳이 무너져 2차선 산길 도입부가 20~30m가량 땅 아래로 가라앉아 길 자체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부근 시카마치(志賀町)는 유령 마을처럼 텅 비어 한 명의 인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246㎢ 남짓한 면적에 2만명가량이 사는 시골 마을은 집집마다 지붕과 유리창들이 전부 깨지고 길바닥에 널브러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전일 지진 발생 직후 쓰나미(지진해일) 발생 경보가 발령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부서진 집을 그대로 둔 채 떠난 것이다. 마을에서 마주친, 지프 차량을 탄 자위대원은 “노토반도의 해안 도로는 지진 때문에 무너진 곳이 많다.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경고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노토반도 일대를 강타한 강진과 이로 인한 화재로 최소 55명(2일 오후 10시 기준)이 사망했다고 홋코쿠신문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지진으로 붕괴하고 화재가 난 건물이 많아 사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피해 지역에서 주민 5만7360명이 집을 떠나 피난처 955곳에 나뉘어 생활하고 있다. 2일 오전 이시카와현에선 건물 3만2900호가 단전됐고 시·정·촌 16곳의 물이 끊겼다. 피해가 유독 극심했던 와지마시의 아사이치(朝市) 거리에선 인근 건물 200여 동이 화재로 소실됐다. 일본 3대 아침 시장 거리 중 하나인 이곳은 이날 1300년의 역사가 무색하게 모든 건물이 무너져내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나라 시대(710~794년) 후기부터 생선·건어물·농산품 등 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공예품·의류들을 팔며 주민들의 아침을 깨워왔지만, 이날은 상인이나 구매객 대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과 검은 연기의 탄내만 가득했다.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들은 모두 전소(全燒)했다.
1일 발생한 노토지진의 피해가 가장 컸던 와지마시는 420㎢ 남짓한 면적에 주민 2만2000여 명이 사는 노토반도 끝 중앙부 소규모 해안 마을이다. 고토 다다노리 효고현립대 지구물리학 교수는 마이니치신문에 “이번 지진은 애초 와지마에서 40㎞쯤 떨어진 스즈시에서 활발하게 시작했다가 역단층형 지진의 특성으로 점차 북진하며 와지마 등 노도반도 선단(先端)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와지마시가 이번 지진으로 받은 영향은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일본 국토지리원은 1일 강진으로 와지마시가 서쪽으로 1.3m가량 움직였다고 2일 밝혔다. 스즈시도 같은 방향으로 약 80㎝ 이동했다.
와지마시로 진입하는 산길인 249번 국도에는 자동차 한 대가 운전자도 없이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옆 도로엔 사람 주먹 2개가 들어갈 만한 큰 균열이 깊게 파여 있었다. 지진에 겁을 먹은 운전자가 균열된 도로의 운전을 포기하고 걸어서 내려간 것이다. 차량은 문도 안 잠근 상태였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걸어선 5~6km는 족히 걸리는 산 중턱이었다.
이번 지진에 의한 전체 부상자 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나오시 공립 노토 종합병원엔 1일 밤까지 30여 명의 환자가 이송됐다고 NHK는 보도했다. 2일에도 골절이나 타박상을 입은 부상자 수십 명이 병원에 옮겨지는 등 사상자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이시카와현에선 무너진 가옥 잔해에 생존자가 깔렸다는 신고가 2일 오전까지만 50건 넘게 접수됐다.
계속되는 여진도 공포를 키우고 있다. 2일 오후 와지마시에 진입해 차에서 잠시 내려 주위를 살피던 와중에도 땅이 울렁였다. 진도 2~3쯤 되는 지진이 계속 느껴졌다. NHK에 따르면, 지진 발생 이후 2일 오후 10시 20분까지 진도 2 이상 지진이 노토반도 일대에서 191회 관측됐다. 진도는 일본 기상청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지진 등급으로 지진이 일어난 곳에서 사람이나 물체가 흔들리는 정도를 나타낸 상대적 개념이다. 진도 2는 실내 전등이 흔들린 정도의 지진을 뜻한다. 1일 이시카와 지진의 진도는 ‘서 있을 수 없고, 무엇인가 붙잡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는 수준’인 진도 7이었다.
지진이 잦은 일본, 재난에 침착히 대응하는 일본인이지만 이날 지진은 극심한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듯 보였다. 이시카와현 남부에 위치한 고마쓰시의 편의점은 겁먹은 주민들이 물건을 사재기하면서 생수·식빵 등이 동나 선반이 텅 비어 있었다. 고마쓰시는 가옥 붕괴 같은 참사는 없었는데도, 추가 강진을 두려워한 시민들이 주요 물자를 대량으로 사가 물자가 동난 것이다.
와지마·스즈·나나오시 등 이시카와 내 병원들은 부상자가 속출하는 와중에 갑작스러운 단수로 수술과 투석 등이 제한되며 현 당국에 급수차 지원을 요청했다. 노토 종합병원 관계자는 “끊임없는 여진으로 선반에서 물건이 떨어지거나 누수로 인해 의료 기기가 침수되고 있다”며 “우선 수술을 위한 물이 시급하다”고 2일 밝혔다. 단수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시청 등 관공서 앞에 식수를 공급받으려는 주민 수십 명이 긴 줄을 서 있는 모습도 자주 목격됐다. 와지마시 노토 공항에는 활주로에 길이 10m, 깊이 10㎝ 균열이 5곳가량 확인돼 500여 명이 고립된 상태다. 공항 관계자는 “4일까지 항공편 운항 등 공항을 폐쇄할 예정이지만 복구 인력이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더 미뤄질 수 있다”고 했다.
도로가 파괴돼 물자 수송이 막히면서 피난처로 대피한 주민 상당수는 1일 밤 이후 하루 동안 아무런 음식도 먹지 못할 정도로, 식량 등 물자가 바닥났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이곳으로 향하는 차선 절반가량이 지진으로 금이 가거나 깊게 파여 도로를 통한 물자 보급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일 “노토반도의 열악한 도로 상황을 고려해 뱃길을 통한 물자 지원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는 “건물 붕괴 등에 따른 피해자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구출해야 한다”며 자위대·경찰·소방 당국 등을 총동원한 대규모 구조 작업을 지시했다. 도야마신문은 이날 이시카와현에 전국 18개 도도부현에서 소방차 546대와 방재 헬기 9대, 소방관 2035명이 파견됐으며 모두 긴급 구조 및 화재 현장 진압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육상자위대 대원 1000여 명도 노토반도 일대에 투입돼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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