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혁파, 산업단지가 꿈틀거린다
우리나라는 지방소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와 일자리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고 이들이 수도권에 정착하면서 지방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곳이 늘어나고 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해결책은 명료하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직장 인근에 정착해 가정을 이루어 살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관건은 어떻게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인근에 살기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어 줄 것인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 경제의 중심이자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노후화돼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산업단지들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산업단지 정책은 철저히 공급자 중심이었다. 수십 년 전에 정해놓은 입주 업종과 토지 용도를 관리하면서 이를 현상 유지하는 데에만 집중해 왔다. 산업·기술 환경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규제에 가로막혀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기존 산업단지 내 입주한 기업이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하려고 해도 이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해 왔다. 과거에 번성했던 산업이 쇠락하면서 산업단지에 빈 땅이 있어도 허용되지 않은 업종에는 투자하기가 불가능했다. 산업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미 성장의 정점을 지난 과거의 산업에 누군가가 투자해서 빈 땅에 공장을 세워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산업단지는 공장만을 위해 계획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너무도 강하다. 산업단지에 조그만 여유 공간이라도 있으면 거기에 공장이 들어서야 한다고만 생각할 뿐 근로자들을 위한 시설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불만 없이 묵묵히 일해왔던 아버지 세대의 근로자들은 이제는 없다. 혹여라도 오래된 산업단지에 기업이 투자하더라도 편의점 한 곳 찾기 힘든 불편한 환경 때문에 근로자들은 일하려 하지 않고 기업은 구인난 때문에 떠나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근로자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직장 근처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성장하는 새로운 산업이 기존 산업단지에 자리 잡을 수 있어야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좋은 일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직주근접이 대세가 되는 분위기에서 좋은 일자리와 함께 일터 근처의 생활 및 주거 편의 환경도 대폭 개선돼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모두 만족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산업단지에 모여들게 되고 지역 경제도 다시 활력을 찾아 지방소멸의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노후화된 산업단지의 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500개에 육박하는 전국의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정부의 재정투입만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규제를 풀어서 민간이 스스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수십 년 전에 지정된 업종을 주기적으로 바꿔 첨단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민간투자로 산업단지 내 다양한 문화·편의시설이 확충될 수 있도록 해 근로자들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한발 더 나아가 산업단지가 지역 특성에 맞게 혁신하고 브랜드화돼 지역주민들도 찾는 명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를 담아 지난해 8월 정부는 '산업단지 입지 킬러규제 혁파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산업집적법 개정안이 새해 첫 국무회의를 통과해 올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이번 규제혁신으로 첨단기업들이 지역에 투자하고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산업단지가 지역사회와 산업 발전의 구심점이 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실제로 산업단지가 변화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정부는 산업단지의 혁신과 지역산업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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