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테러가 들춰낸 우리사회 한없는 경박함

이규화 2024. 1. 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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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논설실장

신년 벽두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습 당했다는 긴급뉴스가 장식했다. 한 개인의 범죄지만 우리사회 분노제어기제가 고장 났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경정맥 손상 여부를 봐야 하나 왼쪽 목에 1~1.5㎝ 정도의 열상(裂傷)이 생겼을 뿐, 외견상 크게 다치진 않았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외상후스트레스가 따를 수 있으므로 예후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규탄 성명이 쏟아졌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테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다. 국민의힘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치인들도 규탄에 합류했다.

"이 대표에 대한 피습 공격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민주주의는 테러로 달성되지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 대표 피습 사건을 심각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규정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장으로서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규탄성명이 온통 '민주주의'다. 경찰이 밝힌 바로는 피의자가 칼날이 13㎝에 달하는 흉기를 준비했고, 이 대표에 접근하며 사인을 받으려는 척 속였다. 배후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배후가 있어 조직적으로 이 대표를 제거하려고 했다면, 양상은 전연 달라진다. 양당과 정치인들의 말대로 그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정상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한 개인의 일탈을 놓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 민주주의 파괴행위는 더더욱 못 된다. 그건 한 개인의 야만적 비행이지 민주주의와는 상관없다. 한 정신이상자의 테러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면, 그런 허약한 민주주의는 애당초 존재할 수도 없었다. 민주주의는 허술하지 않다.

물론 우리사회가 민주주의 체제이므로 그 평온을 깨는 모든 범죄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한 개인의 적개심으로 발생한 테러를 거대 어젠다로 치환하는 건 잘못됐다.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그의 행위는 단순히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적의에서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말의 성찬 속에 산다. 벙긋하면 민주주의를 말한다. 민주주의라는 공기 속에 살고 있는 건 맞다. 그렇다고 모든 게 '민주주의의 것'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그런 습성에 젖어 살고 있으니 80년대 민주화 데모를 좀 했지만 실상은 민족해방(NL), 민중민주(PD) 추종자들이었던 인물들이 민주주의라는 완장을 차고 지난 20여년간 행세하지 않았나.

민주당은 그렇다 치자. 국민의힘까지 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역시 무개념의 소치다. 응당 이 대표에 대한 테러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이 대표의 쾌유를 비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리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데로 연결 짓는 건, 그 말이 갖는 함의를 깊게 생각하지 않은 결과다. 도식적으로 한번 보자. 이재명 대표에 대한 테러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고 위협이라고 한다면, 은연중 이재명 대표는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다. 무의식중에 국민들 뇌에 그렇게 박히게 된다. 과연 그런가.

이번 테러를 보는 관점을 통해 국민의힘에 만연한 사고와 사상의 빈곤이 드러났다. 우리 사회 언어의 무질서, 훼철, 범람도 엿보인다. 정치는 언어로 한다. 사용하는 언어에 정치 철학과 지향이 담긴다. 지향점은 이쪽인데 언어는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면 곤란하다. 틀린 언어를 사용하면 틀린 정치가 된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는 적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지금 한국정치가 '니나노 짬뽕'이 된 것은 언어의 혼탁에서 비롯됐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테러는 한 개인의 야만적이고 비열한 일탈 행위다. 민주주의와 결부될 게 아니다. 이 대표를 공격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허무는 것처럼 과한 언사를 써선 안 된다. 이 대표의 테러에 반사적으로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세태를 보며 우리사회의 한없는 경박함을 느끼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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