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이선균 비극과 한국 후진화

2024. 1. 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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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처음엔 연예계 초대형 마약스캔들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는 허탈하기 그지없다. 핵심 인물로 거론된 지드래곤은 무혐의, 이선균은 국과수 정밀검사에서 두 번이나 음성이 나왔다. 현재 유흥업소 실장과 종업원, 방송인 출신 작곡가 정다은이 검찰에 송치됐고 성형외과 의사 등 2명이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연예계 마약스캔들이란 말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었는데 역대급 용두사미다.

이선균 사건의 경우 유흥업소 실장 말만 듣고 무리한 수사를 했다고 하는데, 수사 자체는 정당한 것이었다. 진술이 나왔으면 수사로 확인해야 한다. 언론은 강한 어조로 의혹을 제기했는데 이도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 됐을까?

이번 사건에서 경찰발 보도가 많이 나왔다. 경찰 관계자가 "마약 투약 정황을 확인했다, 단서를 잡았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다 거짓보도가 아니라면 실제로 언론이 경찰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형사사건 관련해서 수사기관에서 이런 말이 나오면 보통은 사실이고 나중에 유죄로 결론난다. 그리고 이선균이 협박을 받아 거액을 줬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또, 사태 초기에 이선균이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침묵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쳐 언론이 강한 의혹을 제기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경찰의 수사상황을 받아서 보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일을 더 키우고 몰아갔다는 점이다. 어느 무속인이 이선균의 마약 구속을 예견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선균 마약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리고 "이선균 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 더 큰 마약 파문이 터질 수 있다"는 유흥업계 관계자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전하며 일을 키웠다. 이선균은 계속 일관되게 "실장이 수면제라며 주길래 투약했다"고 진술했는데, 일부 언론은 이를 '이선균 마약 인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정말로 이선균이 마약 투약을 인정했다고 믿었다. 음성 판정이 나온 후에 일부 언론은 이선균이 말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이선균의 진술은 일관됐는데 말이다. 또, 음성 판정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검사에서 잡히지 않는 마약을 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과수 검사 결과도 무시하는 것인가? 결국 언론의 신뢰성이 다시 한번 추락했다. 우리 사회 신뢰도가 하락한 것이다.

경찰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정치적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신뢰성은 매우 높아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사기관에서 유죄 정황을 확인했다는 말이 나오면 보통은 법정에서 정말로 유죄가 나온다. 그래서 언론도 수사기관에서 나오는 말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신뢰가 이번에 무너졌다. 지드래곤 무혐의, 이선균 음성이다. 무슨 단서를 잡았고, 투약 정황을 확인했다는 말인가? 경찰이 잡았다던 단서는 유흥업소 실장의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실장은 마약 등 전과 6범이라고 알려졌다. 마약범들은 선처받기 위해 수사관에게 많은 진술을 한다고 한다. 그중엔 진짜도 있지만 사실무근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찰이 좀 더 신중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 사건에선 유흥업소 실장 등이 이선균에게 작정하고 '작업'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마당이다.

하지만 경찰은 아직 수사로 증거를 잡지도 않은 단계에서 너무 자신감을 보였던 것이 아닌가? 만약 경찰이 '연예인이 관련됐다는 주장이 나와 지금 확인중이다'라고까지만 했으면 언론의 태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너무 앞질러서 유죄심증을 부채질하는 말들을 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경찰의 말은 자승자박이 되었다. 단순히 '확인중'이라고만 했으면 나중에 '확인 결과 아니다'라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에 무혐의, 음성이란 결과가 경찰의 망신이 됐다. 그래서 체면을 세우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이선균 유죄 입증에 더욱 매달린 것 아닌가? 수사로 증거를 찾을 수 없자 3차 조사 때도 공개출석으로 망신을 주며 이선균을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려 한 것 아닌가? 이런 의혹이 제기된다.

내사단계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수사 정보들이 흘러나간 것처럼 보이는 정황에도 의혹이 있다. 결국 이번 사건으로 공권력의 신뢰도 실추했다. 그동안은 '경찰이 범죄정황을 확인했다'고 했다면 이제부턴 '경찰이 확인했다고 주장했다'고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한국사회가 조금 더 후진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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