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 어디가] ‘대게’ 찾으러 갔다가 ‘웰니스’ 만나다
박찬은 시티라이프 기자(park.chaneun@mk.c 2024. 1. 2. 19:01
영덕으로 떠난 ‘노 안테나’ 여행
‘영덕’ 하면 바다지만 이번엔 전화도 통하지 않는 산속 오지로 향했다. 음양오행 건강식으로 내 몸에 맞는 음식을 찾아가고 묵언수행을 하며 숲길을 걷다 보니 도시에선 펴지지 않던 거북목이 펴진다. 반쯤은 장난스럽게 생각했던 기공체조도 진지하게 따라 해본다. 목은 이색이 태어났다는 고래불 해변 솔숲과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을 걷는다. 공기가 이렇게 달았나. 영덕에는 ‘대게’만 있는 줄 알았던 당신에게 ‘영덕 웰니스’ 여행을 소개한다.
여행의 목적지인 인문힐링센터로 가기 전, 이태호 원장이 ‘동해라인에서 가장 기운이 좋은 장소’라는 영덕 고래불해변 분수대 앞에서 기공체조를 알려주었다. “오행 기공체조는 일단 천천히 해야 하고 몸의 중심인 ‘어깨’를 돌리는 회전 운동을 포함, 땀이 나기 직전까지만 해야 합니다.” 이 날씨에 땀이 날 리가 없다. “기준점을 잡고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명상입니다. 걷기 명상을 할 때는 발을 올릴 때 ‘올려놓음’, 발을 내릴 때 ‘내려놓음’이라고 말하며 걸어보세요.”(이태호 인문힐링센터 여명 원장)
숙소 체크인 전 과자와 맥주를 사려는 일행을 이태호 원장이 또 다시 뜯어 말린다. “곧 건강식 드실 건데 몸에 나쁜 거 집어넣지 마세요.” “잠시 후면 신호가 안 잡힐 테니 급한 용무 있으신 분들은 미리 연락들 하십시오.” No wifi, No LTE, No 음주.
숙소 체크인 전 과자와 맥주를 사려는 일행을 이태호 원장이 또 다시 뜯어 말린다. “곧 건강식 드실 건데 몸에 나쁜 거 집어넣지 마세요.” “잠시 후면 신호가 안 잡힐 테니 급한 용무 있으신 분들은 미리 연락들 하십시오.” No wifi, No LTE, No 음주.
강제 디톡스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문힐링센터 여명(‘새벽빛’, ‘여행’과 ‘명상’이란 뜻도 포함된다)은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운서산(雲捿山, 519m)의 기운이 흘러 들어오는 명당에 위치해 있었다. 낮지만 골짜기가 깊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핸드폰 안테나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즐기는 강제 디톡스
일행들은 생활 한복으로 갈아입은 후 숙소 앞마당으로 모였다. 절을 닮은 건물들 덕에 템플스테이를 하는 느낌이다. “간담이 튼튼하면 마음이 유하고, 간담이 약하면 짜증이 일어납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는 레몬이나 귤을 먹으면 좀 가라앉습니다. 음식, 운동, 명상 순서로 몸과 마음을 관리해 보세요.”(이태호 원장)
저녁 메뉴는 버섯탕수와 연근탕, 대추 샐러드와 두부로 속을 채운 피망이다. 들기름에 볶은 무말랭이를 넣고 지은 밥 위에 까만 김장(김으로 만든 장)을 고명으로 올렸다. “생식부터 드세요.” 첫 생식이 단맛이 드는지 짠맛이 드는지에 따라 각자의 체질을 알려준다. 음양오행에 따라 오미(五味)를 구분하고 신체 장부의 건강상태와 계절에 따라 음식을 디자인하는 것.
“김장의 검정색은 한겨울, 현재 시간대에 해당하는 색입니다. 버섯에도 고기의 색깔과 맛이 들어가 있어서 우리 몸과 장부, 마음까지 에너지를 주죠.”(안지현 조리사) ‘지금은 대추가 맛있는 때’라며 “봉화 농부가 보내준 것을 최소한의 조리와 양념을 가해 채소 본연의 맛을 살렸다”고 말한 그녀는 “가을 겨울 근채류인 우엉과 연근으로 국을 끓이고, 목이버섯을 넣은 두부를 피망에 쪄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장의 검정색은 한겨울, 현재 시간대에 해당하는 색입니다. 버섯에도 고기의 색깔과 맛이 들어가 있어서 우리 몸과 장부, 마음까지 에너지를 주죠.”(안지현 조리사) ‘지금은 대추가 맛있는 때’라며 “봉화 농부가 보내준 것을 최소한의 조리와 양념을 가해 채소 본연의 맛을 살렸다”고 말한 그녀는 “가을 겨울 근채류인 우엉과 연근으로 국을 끓이고, 목이버섯을 넣은 두부를 피망에 쪄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여명에서는 사계절과 하루의 시간대에 맞춰 제철의 가장 신선한 재료들을 최소한의 열과 양념으로 조리한다. 3년 이상 된 유기농 된장과 간장을 사용하고 800도로 구워낸 미네랄 용융 소금만으로 맛을 낸 음식은 담백하다. 눈으로 먹고 음식으로 한 번 더 먹는 ‘꽃다운’ 상차림, 고급 한정식 집을 연상시키는 정갈함. 과자를 못 사게 했다고 입이 나온 참가자들의 입은 어느새 쑥 들어갔다. 부지런히 오물거리느라 입들이 바쁘다.
명상에는 가부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의 ‘심검당(尋劍堂)’에서 음양오행에 맞춘 건강 강의를 들은 뒤 모닥불을 즐기며 장작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도시에선 잘 보이지 않던 별이 촘촘하게 운서산 너머 하늘을 채우고 있다. 산 어둠이 일찍 내려앉은 앞마당엔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만 가득하다. SNS도 유튜브도 안되니 잠자는 것 빼곤 할 일이 없다.
뜨끈뜨끈한 곡물가루 팩을 배 위에 얹고 잠을 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아침이 밝아온다. 이름 그대로 ‘여명’답다. 휴대폰 불빛을 보지 않아서인지, 기공 체조로 뚫린 몸을 모닥불과 온돌로 지져서인지, 꿈 한 번 꾸지 않고 푹 잤다. 여명에서 가장 기운이 좋다는 운서당(尋劍堂)에 모여 기공체조를 한다.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여명에서는 마음을 먼저 먹고 음식을 먹습니다. 가슴 앞에 손을 대보세요. 오늘 먹는 이 아침 이 에너지로 음식을 먹는다 여기시고,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오늘 이 음식으로 뜻한 바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마음 속으로 염원을 한 번 하시고 드세요.”(이태호 원장)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여명에서는 마음을 먼저 먹고 음식을 먹습니다. 가슴 앞에 손을 대보세요. 오늘 먹는 이 아침 이 에너지로 음식을 먹는다 여기시고,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오늘 이 음식으로 뜻한 바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마음 속으로 염원을 한 번 하시고 드세요.”(이태호 원장)
오후엔 게르에서 ‘눕기 명상’에 돌입했다. ‘자애명상’이라는 그 자애로운 이름답게 따뜻한 곡물 가루를 벤 채 낮잠을 자도 되는 명상이었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해야 명상인 줄 알았는데, ‘걷기’도, ‘잠자기’도 이곳에선 명상이었다. 콩팥과 방광에 좋다는 서리태와 면역력에 좋은 녹두를 넣은 곡물 가루를 베고 잠자기, 아니 ‘눕기 명상’에 돌입했다. 불이 꺼지자마자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굳이 깨우지 않는다. 게르 지붕을 통해 행운이 깃든다고 믿은 몽골 키르기스인들처럼, 눈을 감은 채 원형의 천창으로 들어오는 기(氣)를 느껴본다.
“무기력하고 지친 상태를 넘어 심신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힐링’이라면 웰니스는 거기에 더해 몸과 마음에 적극적으로 활기를 불어넣어 외부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이태호 원장)
“무기력하고 지친 상태를 넘어 심신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힐링’이라면 웰니스는 거기에 더해 몸과 마음에 적극적으로 활기를 불어넣어 외부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이태호 원장)
내 몸에 맞는 자연 건강식으로 먹는 계절 보약밥상
“밤새 속이 편안하셨나요? 아침에는 목기(木氣, 오행 중 목의 기운)가 중요하죠. 우리 몸에서 목기가 부족하면 피곤하고 간과 담낭이 안 좋아지는데, 이럴 때는 목기에 좋은 신맛 음식을 섭취, 예민함과 피로를 없애주는 것이 좋습니다.”(안지현 조리사) 버섯과 당근을 볶아 새싹보리 밀전병에 싸먹는 조식은 마치 샌드위치 같았다. 에너지를 올려준다는 토마토와 호박을 넣은 죽에서는 정말로 신맛이 났다.
“손이 떨릴 정도로 감정 조절이 잘 안될 때는 쓴맛,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 한 잔 드시고 가라앉히는 게 필요합니다. 우울하고 자꾸 눈물이 날 때는 폐와 대장이 약해지는데 그럴 때는 매운 맛의 음식을 드셔주면 좋습니다.”
“얼굴이 살짝 갸름하고 턱이 뾰족하네. 허리가 안 좋지 않아요? 콩팥이나 비위(림프와 위)도 안 좋죠? 소금과 단 음식을 조금씩 섭취해주세요.”(이태호 원장) 짜거나 매운 음식을 무조건 금하는 사회 통념보다 허한 부분을 음식으로 보완해주고 체질분류법에 따라 내 몸에 활기를 찾아주는 음식 섭취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입소할 때는 통화도, 음주나 간식도 불가능한 데 대한 일행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다들 가볍다. 명상할 때 기준점을 잡으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떠올라, “올려놓음”, “내려놓음”을 나지막히 읊조리며 걸어본다. 들이쉼, 내쉼. 명상은 단순히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잡은 기준점을 알아채고 집중하는 것이라는데, 내 삶의 기준점은 어디로 두어야 할까. 그 기준점이 흔들릴 때 다시 한 번 영덕을 찾고 싶어졌다.
입소할 때는 통화도, 음주나 간식도 불가능한 데 대한 일행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기차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다들 가볍다. 명상할 때 기준점을 잡으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떠올라, “올려놓음”, “내려놓음”을 나지막히 읊조리며 걸어본다. 들이쉼, 내쉼. 명상은 단순히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잡은 기준점을 알아채고 집중하는 것이라는데, 내 삶의 기준점은 어디로 두어야 할까. 그 기준점이 흔들릴 때 다시 한 번 영덕을 찾고 싶어졌다.
Info 영덕 인문힐링센터 여명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203
※ 인문힐링센터 여명 문화관광부가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한 곳으로 한의학에 기반한 기공체조, 명상, 자연 건강식단을 제공한다. 업무 스트레스 완화, 멘탈 케어를 통한 조직의 생산성 향상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숲속 건강 개선 프로그램과 프리미엄 마음 관리 프로그램으로 교사들의 자존감 향상과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한편, 한의사회와 함께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치유에도 나서고 있다.
※ 인문힐링센터 여명 문화관광부가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한 곳으로 한의학에 기반한 기공체조, 명상, 자연 건강식단을 제공한다. 업무 스트레스 완화, 멘탈 케어를 통한 조직의 생산성 향상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숲속 건강 개선 프로그램과 프리미엄 마음 관리 프로그램으로 교사들의 자존감 향상과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한편, 한의사회와 함께 소방관들의 트라우마 치유에도 나서고 있다.
영덕, 그 밖의 웰니스 여행지를 찾아서
나옹왕사기념관에서 캡슐 마사지 받기
왕사, 즉 임금의 스승을 뜻하는 나옹왕사는 영덕이 고향인 한국 불교의 3대 화상이다. 그 유명한 청산가-‘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를 지은 고려 시대 승려로 공민왕의 스승이다. 인도 불교와도 교류한 그는 고려로 돌아와 불교의 가르침을 쉬운 가사문학으로 만들었다. 나옹왕사기념관 내부에는 자연 음식 체험관과 북카페, 마사지 힐링룸도 마련돼 있다. 안마의자와 함께 전신 마사지 캡슐, 종아리 마사지기 등이 설치돼 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드러눕는 곳이다.경북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30
종이 보살이 있는 670년 역사의 장육사에서 풍경 소리 듣기
종이 보살이 있는 670년 역사의 장육사에서 풍경 소리 듣기
고즈넉한 풍경 소리가 명상을 돕는 곳이다. “보통은 진흙 위에 삼베를 바르고 옷칠을 했는데 보물 993호 건칠관세음보살좌상(삼베 대신 종이)은 한지(닥나무)를 불리거나 끓인 죽으로 감아 겉면이 두둘두둘합니다.” 장육사 스님은 장육사의 역사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준다. 관음전의 국가 보물인 종이 불상 건칠보살좌상 외에도 경북유형문화재 138호라는 대웅전의 벽화 선녀도도 살펴볼 것. 경북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
영덕 블루로드 야간 트레킹하기
영덕 블루로드 야간 트레킹하기
영덕의 해안선은 해파랑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다.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688km의 해파랑길 중에서 영덕 블루로드는 영덕 대게공원에서 시작해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약 64.6km의 해안길을 말한다. 달빛고래 야간 트래킹 / 맨발 황톳길 걷기 / 숲속 산림욕 등의 웰니스 프로그램이 향후 진행될 예정이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 산18-1
고래불 해변에서 솔숲 트레킹하기
고래불 해변에서 솔숲 트레킹하기
이번 영덕 웰니스 여행의 출발지. 국내 최장길이라는 7.5km의 고래불해변 뒤편 마을은 목원 이색이 태어난 곳인데 달밤에 고래가 뿜는 물이 불처럼 보여서 고래불로 불린다. 이곳 솔숲 야영장은 1km 넘게 100개 이상의 사이트가 있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 3대 캠핑장’이지만 숙영료는 단돈 3만 원. 캠핑장을 운영하지 않는 겨울엔 한적한 솔숲 트레킹이 가능하다. 경북 영덕군 병곡면 고래불로 68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에서 하늘 보기
벌영리 메타세콰이어숲에서 하늘 보기
20년 전부터 개인이 가꾸어 무료로 개방해왔다는 곳이다. 주인이 80대의 나이지만 여전히 공들여 가꾸고 있는 숲의 나무는 높다랗게 하늘까지 뻗어 있다. 메타세콰이어뿐 아니라 편백과 측백나무가 곡곳에 있어 곳곳에 있는 벤치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다 보면 ‘아, 이게 힐링이구나’ 싶다. 길이가 짧아서 왕복 30분이면 충분하다. 영덕의 숨은 삼림욕 여행지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벌영리 산 54-1
[글과 사진 박찬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1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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