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성의 인사이트] '부채 불감증' 해결법

김규성 2024. 1. 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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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성 경제부 부국장·세종본부장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뇌관에 불이 붙었다. 기업의 부채위기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의 가장 어려운 시기로 기억되는 IMF 외환위기를 소환한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지만 대기업의 무분별한 차입경영과 이어진 금융기관 부실, 즉 부채위기였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태영건설 PF 부실 상당부분은 직접차입이 아닌 보증채무다. 건설업에 한정된 관행이다.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외환위기와 비교는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다만 외환위기를 겪고 달라진 것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부채경영은 안 된다'는 인식전환이었지만 이번 사태는 반복과 망각을 거쳐 '부채 불감증'이 교훈의 자리를 꿰찼다는 걸 보여준다.

부채 문제는 한국 경제 최대 리스크다. 기업뿐만 아니다. 가계, 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제 3주체의 부채를 모두 더한 우리나라의 총부채 규모가 2023년 6000조원을 확실하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 집계치다. 2023년 2·4분기 말 약 5956조원이었다. 부채 증가만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경제규모가 커지면 부채가 늘고 미래를 위해 빚을 내 투자하는 것은 자본의 효율적 활용이다. 문제는 부채의 빠른 팽창 속도와 역주행이다. 2023년 6월 말 기준 나라의 전체 빚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73.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위다. 역대 최고 순위다. 1년 전에는 12위였다. 더구나 GDP 대비 총부채비율이 높아진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했다. 나쁜 통계치는 더 있다. 2023년 3·4분기 기준 가계부채가 GDP를 웃도는 국가는 선진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기업부채는 GDP 대비 125%를 훌쩍 넘겼다.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까지 포함한 국가부채는 올해 말 GDP의 130%를 초과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빚을 줄이는 것은 고달프다. 그렇지만 OECD 국가들이 부채 축소에 나서는 것은 이유가 있다. '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그리스조차도 부채 감소 모범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한다. 빚잔치를 무서워하지 않는 집단은 반드시 시장의 응징, 다시 말해 위기를 겪는다는 것을 경험해서다. 지난 50년간 전 세계에서 과도한 수준의 부채 증가로 인한 금융위기는 대략 15차례 정도 발생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남미의 외채 문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알 만한 위기의 뿌리는 부채 문제였다.

부채 축소방안은 다양하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이 있다. 성장률을 높여 부채비율을 낮춰도 된다. 인플레이션을 유도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도 있다. 부작용도 만만찮다. 긴축은 경기침체를 불러와 부채상환 능력을 더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고성장은 이상적 방법이지만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오일붐이 일어났을 때 가능하다. 고인플레이션은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 같은 국가는 외환위기로 직행할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위기를 겪지 않고 부채축소를 한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했을 정도다.

부채 줄이기는 인기 없는 정책이다. 정권마다 떠넘기기 일색이었다. 표 떨어지는 강제 다이어트를 누가 즐겁게 하겠는가. 과도한 민간부채는 저성장과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부채 급증은 경기대응력 약화, 국가신인도 추락을 몰고 온다. 부작용이 가장 적은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경제성장률보다 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정책조합이다. 예컨대 정부 부채 축소는 재정준칙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구조개혁과 같은 성장을 위한 새로운 전략도 동반해야 한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 품고 있는 시한폭탄을 언제까지 안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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