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입법과정에서의 미래재정에 대한 사전점검 '법안비용추계'
(서울=뉴스1) = 정부는 5개년도의 중기적 시계에서 재정 운용 전략과 목표를 담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매년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이 계획은 경제 상황과 국가재정 운용 여건의 변화를 반영하여 수정·보완되는데, 향후 5년간 정부의 기본적인 재정 운용 방향은 물론 재정수입과 지출, 수지 및 국가채무 등에 대한 중기 전망과 재정 운용 목표, 분야별 재원 배분 방향 등이 제시된다. 매년 1월 각 부처가 기획재정부에 중기사업계획을 제출하면, 기재부는 주요 정책과제에 대한 부처와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계획을 수립한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기재부가 앞으로 5년간 나랏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쓸 것인지를 보여주는 중기 전망이자 계획인 셈이다.
정부로 하여금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목적이 한정된 국가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하기 위함이라고 했을 때, 국회의 입법과정에서도 이와 같은 목적으로 법률안 제·개정의 결과가 국가재정에 끼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률안 각각의 입법에 따른 재정 소요 규모를 예측하는 법안비용추계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법안 비용추계는 법률안이 통과되어 시행될 경우 해당 법률안의 시행에 따른 재정지출 순증가액 또는 재정수입의 순감소액을 추계한다. 법안 비용추계는 소요 비용을 추계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비용편익분석과 유사하나 비용편익분석이 비용 이외에도 편익과 경제학적 기회비용까지 분석 대상으로 포함하는 반면, 법안 비용추계는 법률안의 시행에 따라 소요되는 화폐적·회계적 비용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입법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입법 영향분석과 유사하나, 입법 영향분석은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전부 분석하는 데 반해 법안 비용추계는 입법에 따른 재정적 측면의 영향에 한정하여 분석한다는 점에서 입법 영향분석과 차이가 있다.
법안 비용추계 제도는 예산상의 조치가 수반되는 의안에 대해 예산명세서를 첨부하도록 한 1973년 국회법 개정으로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단, 실제 예산명세서는 제13대 국회인 1988년부터 첨부되기 시작했고 제13대 국회부터 제16대 국회까지 예산명세서 첨부 실적은 총 의원발의 법안 건수의 3.8%에 그치는 수준으로 저조했다. 이후 2005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법안 비용추계 제도가 도입되고, 비용추계서 제출 대상 범위에 예산 외 기금 상의 조치가 수반되는 의안도 포함됐다. 2006년에는 국가재정법이 제정됨에 따라 정부가 제출하는 재정수반 법률안과 정부 입안 법령안에 대해 추계 자료와 이에 상응하는 재원조달방안을 첨부하도록 제도의 대상과 범위가 확대됐다.
2014년 국회법 개정도 법안 비용추계 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에는 비용추계서 작성 주체에 관한 규정이 없어 의원실에서 비용추계서를 직접 작성하기도 했으나, 2014년 국회법 개정에서는 비용추계의 전문성과 신뢰성 확보의 차원에서 국회예산정책처를 비용추계 전담기관으로 일원화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회답한 비용추계는 2014년 59건에서 2022년 4009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2023년의 경우 아직 공식 통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1월부터 11월까지 회답한 비용추계가 벌써 4,676건에 이른다(국회예산정책처, 재정추계&세제 이슈, 23.12.21.). 이같이 비용추계 회답 건수가 늘어난 것은 법률안 발의 건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제17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은 총 7489건이었으나, 제18대 국회에서는 1만3913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 제20대 국회에서는 2만4141건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제21대 국회의 발의 건수는 이미 제20대 국회에서의 건수를 넘어섰다(23.12.21. 기준 2만5229건).
국회미래연구원은 관련 연구를 통해 과도한 법률안 발의 시 우려되는 문제점으로 부실 검토와 심사 등을 지적한 바 있다(박상훈, 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20.12.31). 법안 비용추계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도 많은 법률안 발의가 행정 과부하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한정된 인력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다보면 비용추계의 정확도가 낮아질 수도 있다. 결국 정확한 비용추계를 통해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사전에 점검하고 재정건전성을 제고하고자 한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 근본적으로 입법의 양보다는 질을 중심으로 우리 국회의 입법활동이 이뤄져야 하나 법안비용추계 대상의 기준을 보다 세분화하여 주요 법률안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제22대 국회가 개원을 한다. 새 국회에서는 전체 입법의 양은 줄어들되, 보나 나은 미래를 위한 입법은 더 늘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입법과정에서도 미래 국가재정에 대해 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관련 제도가 효율적으로 작동되길 기대해 본다.
/유희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지원실장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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