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 중 4곳 '역성장' 공포···"영업익 15% 이상 후퇴"도
■ 기업 실적 전망
업황 부진·글로벌 원자재값 부담
건설·에너지업종 올해도 가시밭길
부동산PF 위기 확산 우려도 커져
30%가 "경영환경 작년보다 악화"
널뛰기 하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고금리 및 글로벌 경기 불황 등의 여파로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올해 실적이 지난해보다 더 나빠진다고 전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경제인협회와 공동으로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경제·경영 환경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40.7%는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응답 기업 20곳(19.8%)은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 수준이거나 5%가량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3곳(12.9%)은 지난해보다 -5~-10% 수준으로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업이익 역성장 폭이 15%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기업도 3곳(3%) 있었다. 응답 기업 중 가장 많은 53곳이 포진한 제조업 분야 기업들이 평균적으로 1.9% 실적 개선을 이룰 것이라고 응답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전망이다.
올해 역성장을 전망한 응답 기업들은 실적 악화 요인에 대해 △주력 품목 업황 악화(24.4%)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른 재무 리스크 확대(24.4%)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24.4%) 등을 첫손에 꼽았다. 다만 올해 실적 개선을 전망한 기업 중 23.3%는 ‘국제 원자재 가격 안정’을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칠 주요 요인으로 꼽아 업종별로 확연한 시각 차이를 보였다. 주요국의 소비 회복 지연(12.2%), 공급망 안정 지연에 따른 생산 차질(12.2%) 등도 기업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언급됐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1.9%)과 전기·가스·증기·수도사업(-1.7%) 등의 전망이 특히 어두웠다. 주력 사업의 업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 변동성 확대로 인한 재무 리스크 등이 기업 경영을 옥죌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공사비 상승 부담이 부동산 시장 침체와 맞물리면서 최악의 흐름을 향해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등의 영향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불안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원자재 가격 인상의 직격타를 맞은 건설 업계는 3년 만에 공사 비용이 30% 가까이 올랐다. 서울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시공 계약을 맺은 A 건설사는 치솟은 공사 원가 때문에 수천억 원대의 공사비 인상을 통보했지만 조합원들의 반대를 뚫지 못하고 있다. 계약대로 공사를 할 수도 없지만 협상을 위해 공사를 중단하면 손해가 더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에너지 관련 기업들 또한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의 불안정이 커 올해 전망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전력은 조 원 단위 적자에 시름하다가 가까스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원자재 가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적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부채를 많이 늘린 탓에 고금리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높고 판매 부진에 원자재 가격 상승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이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통상 환경이 지난해보다 개선되더라도 여전히 좋지 않다는 인식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암울했던 경제 여건의 기저 효과로 인해 올해 경영 환경이 상대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오히려 불안에 가까웠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 기업의 3분의 1(30.7%)은 올해 경영 환경 전망이 “지난해보다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대비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13.9%)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올해 수준이라는 응답을 더하면 ‘올해와 비슷하거나 악화될 것’이라는 기업이 87곳(86.1%)에 달했다.
올해 경영 환경은 아무리 좋게 봐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답변한 지난해 대비 올해 평균 영업이익 실적 변화 예상치는 1.3%였다.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업계의 뚜렷한 업황 개선 신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 대부분의 기업이 지난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물가가 지난해보다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되기는 하지만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이 워낙 커 기업 입장에서는 불안 요인이 더 많다. 게다가 올해 미국 대선을 비롯한 주요 선거가 몰리면서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수출 중심인 우리나라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기업 경영 전략을 짜되 중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미래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반적으로 대내외적 여건이 모두 전망이 밝지 않고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는 등 냉정한 전략을 세우면서 글로벌 네트워킹 강화, 투자 기회 분석 등에도 적극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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