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상대·재범’ 성범죄자, 출소 후 지정시설로···‘한국형 제시카법’ 이중처벌 우려
아동을 상대로 범행했거나 재범을 저지른 성폭력 범죄자는 출소 후에도 국가가 지정하는 시설에서 거주하도록 하는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이 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범죄자의 주거지가 제한되는 등 사실상의 인신구속으로 이중처벌 소지가 있고, 수용 기간이 선고받은 형기에 비해 지나치게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터여서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법무부는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법안은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성범죄를 3차례 이상 저지른 사람 중 성폭력 범죄로 10년 이상의 징역형과 위치 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받은 사람이 대상이다. 이들이 출소 후에도 보호관찰소장의 신청과 검사의 청구, 법원의 명령을 거쳐 국가 지정거주시설에 의무적으로 거주하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추진한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다. 어디에 있는, 어떤 시설에, 어떤 방식으로 성범죄자를 유치할 것인지는 법안에 담기지 않아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서 관련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 법안은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수원 발발이’로 알려진 연쇄 성범죄자 박병화 등 성범죄자들이 출소 후 별다른 통제 없이 원하는 지역에 거주하자 주민들이 반발한 게 추진 배경이 됐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이후 대상 성범죄자가 거주지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심리상담과 치료 등이 제공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안에 추가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법안 대상자가 되는 성범죄자는 2022년 말 기준 325명이다. 2025년까지 187명이 추가로 출소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이날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함께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개정안은 검사가 재범 성범죄자를 기소할 때 의무적으로 전문의 감정을 실시하고 성도착증 환자에 해당하면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하도록 했다. 현재 수감 중인 성범죄자에 대해서도 거주지 지정명령 신청 전 보호관찰소장이 본인 동의 여부를 확인한 뒤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한국형 제시카법에 대해 “분명한 이중처벌이다. 시설 수용 기간이 얼마나 될지 불확실하고 기준이 되는 재범률도 모호하다. 사회로부터 오랜 격리가 필요한 자라면 애초부터 법원에서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해 교정시설에 수용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제시카법은 범죄자에 대해 학교 등 일정 장소로부터 접근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우리 법안은 인신을 구속하는 인권침해 성격이 있어 미국 제시카법과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교정기관이 현재까지 범죄자의 교정·교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부터 평가하지 않고, 정책 실패의 책임을 단순히 범죄자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범죄자가 교정이 안 돼 추가 수용이 필요하다고 낙인찍기 전에 정부의 교정 정책이 제대로 됐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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