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해달라" 다가와 칼로 공격 … 李대표 긴급 수술
경찰서 "살해하려 했다" 진술
민주당원 여부는 확인안돼
헬기로 서울대병원 긴급 이송
혈관 수술후 중환자실 회복중
전문가 "정치 지나친 양극화
상대를 제거 대상으로 생각"
◆ 이재명 피습 ◆
2일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 신공항 용지를 둘러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급습해 테러를 가한 피의자가 경찰 진술에서 살해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부산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이날 살인미수 혐의로 60대 남성 김 모씨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이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씨는 현장에서 체포된 뒤 인적사항 등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본격적인 경찰 조사에서 입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27분께 신공항 용지를 살펴본 뒤 차량으로 이동하기 직전 기자들과 문답을 하고 있었다. 이 대표 지지자 모임인 잼잼자원봉사단의 파란 왕관과 비슷한 것을 머리에 쓴 범인이 갑자기 뛰어들어 이 대표의 왼쪽 목을 찔렀다. 인터넷에서 구입했다고 진술한 범행 도구는 길이가 18㎝에 달하는 흉기였다. 현장에 지지자와 당 관계자까지 몰려 있다 보니 범인의 접근을 빠르게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대표를 공격한 이 남성은 지난달에도 이 대표가 참석한 행사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 계획 범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씨는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이 대표가 참석한 민주당 부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 현장 인근에도 있었다. 이때도 이 대표를 공격할 때와 같은 왕관 모양의 띠를 머리에 하고 있었으며 이 대표의 동선을 따라다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충남 아산시에서 오랫동안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가 민주당원이라는 설이 돌고 있지만 경찰이나 민주당로부터의 공식 확인은 아직 없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취재진이 당원 여부를 묻자 "확인 중"이라고 했다. '본인이 당원이라고 진술한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진술 내용에 대해선 말하기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이 대표가 다친 내경정맥은 목에 위치해 있으며, 머리에 산소를 공급한 뒤 내려오는 정맥혈을 심장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혈압이 높은 경동맥에 비해선 위험도가 낮은 편이지만 급소 부위를 지나가기에 손상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안정을 취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인근은 이날 수십 명의 취재진과 이 대표 지지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관계자들과 경찰 병력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 피습 후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20분이 넘게 걸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표가 습격당했다는 최초의 소방 신고는 이날 오전 10시 27분에 접수됐고 이 대표가 구급차에 탑승한 시간은 오전 10시 50분이다. 이에 대해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사고 현장에서 출동할 수 있는 가까운 구급대가 20㎞ 넘는 거리에 있어 도착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현장에서 응급 처치는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부산 강서구는 부산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할 만큼 넓다. 어촌마을인 가덕도는 강서구 주거·공업단지와도 거리가 멀다. 가덕도 내에 출동할 수 있는 장비는 구급장비를 보유한 경형 산불차가 유일했고 환자 이송은 불가능한 차량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경형 산불차가 오전 10시 49분께 도착해 대원들이 응급 처치했다"고 설명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대표의 수술이 끝난 뒤 "이 대표에 대한 정치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고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3일 오전 10시 30분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의원총회에서는 이 대표 피습 경위와 치료 상황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 대표와 부산에 함께 내려간 최고위원들은 이 대표가 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후 당초 방문 예정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들이 공유한 통화 내용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대표의 상태는 어떻습니까"라면서 걱정했으며 최고위원들이 양산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해 말하자 "그 뜻은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지금은 대표를 모시고 가서 수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일에 최선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정치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의 양극화를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에 있어 이런 역사는 남으면 안 된다"며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가 감성화되면 지지하지 않는 인물을 타도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강해진다"며 "감성화를 막기 위해서는 실종된 정치를 회복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으로 여야 당대표에 대한 괴한들의 피습이 벌어졌던 사건이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2006년 5월 20일 오후 7시 15분에 벌어진 박근혜 전 대통령 '커터칼 피습' 사건이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 신촌의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를 하다가 지 모씨(50)가 휘두른 커터칼에 피습됐다. 박 전 대통령 우측 뺨에 무려 11㎝의 자창을 입혔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봉합 수술을 받았다. 그 유명한 "대전은요?"라는 발언이 이때 나왔다. 범인은 전과 8범이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3월 7일 오전 서울 신촌에서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하던 중 한 노인(69)에게 망치로 수차례 맞았다. 그는 '표삿갓'이라는 명패를 단 채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구독자 100여 명의 정치 유튜버였다.
[부산 위지혜 기자 / 박동민 기자 / 서울 서동철 기자 /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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