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교육교부금을 저출산에? 교육혁명에 써야
12척의 판옥선이다
땔감으로 써서는 안된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강연에서 한국 교육의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가 희망이 있다고 보는 첫 번째 근거는 "교육에 쓸 돈이 있다"는 것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얘기다. 이 부총리의 논리는 이렇다. "당분간 교부금은 계속 쌓이는데 학생 수는 줄어든다. 학생 1인당 쓸 수 있는 돈이 계속 늘어나니 이 돈으로 무엇이든 하면 된다."
교육교부금법에 따르면 내국세 20.79%는 무조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할당된다. 2022년에만 약 63조2000억원이 할당됐다. 돈이 넘쳐 한 해에 다 쓰지도 못한다. 최근 몇 년간 전국 시도 교육청에 기금으로 적립된 돈만 약 27조원에 달한다. 돈은 앞으로 더 쌓일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1207만원이었던 학령인구(6∼17세) 1인당 교육교부금은 2032년에는 3039만원이 된다. 학령인구는 31.9% 줄어드는데 재정교부금은 71.3%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언론들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 당장 인구가 주는데 왜 엉뚱한 데 돈을 낭비하느냐는 논리다. 최근엔 재정교부금 일부를 떼서 저출산 대응에 쓰자는 정책 아이디어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발(發)로 보도되기도 했다.
같은 돈을 놓고 부총리는 '희망'이라 이야기하고 다른 쪽에선 '낭비'로 비판한다. 두 쪽 다 논리가 있지만 나는 부총리 쪽 주장이 더 솔깃하다. 특히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쪼개서 저출산 해결에 쓰자는 주장은 무슨 말인가 싶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한국 사람은 다 아는 저출산 원인을 헷갈리고 있다.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바보야, 문제는 교육이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저출산 대응 예산은 연간 51조7000억원으로 출생아(24만9000명) 1명당 2억1000만원꼴이고 그래서 나온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다. 매년 늘어나는 저출산 예산에 비례해 출산율은 매년 줄고 있다. 저출산 예산을 연간 100조원으로 늘리면 출산율은 어쩌면 1명대로 회복될지도 모른다. 혹은 0.5명으로 줄거나.
윤석열 대통령은 그제 신년사에서 훌륭한 교육정책, 돌봄정책 등이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 평가는 이른 감이 있다. 제대로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남아돈다면 그것을 갈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대느니 '교육 혁명'을 한번 해봤으면 한다. 그 교육 혁명이라는 것은 가정의 사교육 부담을 국가가 흡수해 버리는 수준까지 가는 것이다. 중산층 이하 거주 지역의 어린이집 상당수는 '하꼬방' 수준이다. 거기서 계층 간 교육 격차와 이동장벽이 시작된다. 유보 통합을 그냥 할 것이 아니라 전국 어린이집을 영어유치원 수준으로 높이면 어떤가. 올해 2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가 실시된다. 맞벌이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학교에서 돌보고 그 시간에 영어, 태권도 등 사교육까지 시켜주는 콘셉트다. 시늉만 내지 말고 사설 학원보다 낫다는 소리가 나와야 한다. 돈을 충분히 들이면 가능하다.
그래도 출산율은 안 오를 수 있지만 그 투자는 헛되지 않다. 인구가 줄어들 때 국내총생산(GDP)을 유지하고 나라가 돌아가게 하는 방법은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방법은 교육 투자밖에 없다. 이 부총리 얘기다. "우리는 모든 학생에게 IT 디바이스를 지급할 수 있고 통신망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 혁신적인 AI 교육 시스템을 실험하기에 이만한 나라가 없다." 그 실험이 국가 경쟁력의 판도를 바꿀지도 모른다. 인구 감소를 멈추게 하는 것도 교육, 인구 감소 시대에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교육이다. 그 12척의 판옥선을 부수어 땔감으로 쓰자는 주장은 어리석다. 교육 예산이 남아도는가. 남기지도 말고, 딴 데 쓰지도 말고 교육에 통 크게 쓰자.
[노원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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