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용과 물고기의 갈림길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이 시작됐다. 용의 상서로운 기운 때문인지 용과 관련된 속담과 고사는 유독 많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한다는 화룡점정(畵龍點睛), 막강한 두 사람이 서로 싸운다는 용호상박(龍虎相搏), 날아오른 용이 구름에 올라탄다는 비룡승운(飛龍乘雲) 등이 있다.

지금은 학원 이름 앞에 많이 쓰이는 '등용문'은 잉어가 중국 황허강 상류 물살이 거센 협곡 용문을 오르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경제·경영 전문가 90명은 2024년 경제 키워드로 '용문점액(龍門點額)'을 꼽았다. 중국 지리서 '수경주'에 나오는 말로, 잉어가 용문을 오르면 용이 되고, 그러지 못하면 이마에 상처만 얻고 하류로 떠내려간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하거나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기로' '살얼음판' '변곡점' 'Squeeze Chimney(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음)' 'Lost in Fog(안갯속 길을 잃다)' 등을 선택했다.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큰 것이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에 시달리며 1%대 성장이라는 터널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도 이 답답한 저성장 터널을 탈출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세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고금리·고물가로 쪼그라든 내수 회복은 더딜 것으로 전망된다. 뚜렷한 경기 반등 없이 'L자형'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금융 불안 등이 최대 위험으로 꼽힌다. 유럽, 중동 전쟁과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선을 비롯해 76개국에서 치러지는 선거도 세계 경제의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용이 될 것인가, 물고기로 남을 것인가. 위기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힘찬 용틀임으로 협곡을 뛰어넘어야 더 나은 미래를 볼 수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