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돌이 갓 지난 내 아이의 질병코드는 R62.9이다

교사 김혜인 2024. 1. 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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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매주 화요일 고등학교 교사 김혜인이  발달 지연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김혜인

[교사 김혜인] 내 아이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따르면 ‘기대되는 정상 생리학적 발달의 상세불명 결여’라는 질병에 해당한다. 질병인가? 질병분류기호가 부여되었으니 질병인가 보다.

한국 나이 39세, 만 나이 37세에 첫 아이를 낳았다. 내가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된 것은 다시 생각해도 희한한 일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생각하기만 해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 다른 사람과 연애했을 때 결혼은 상상할 수 있어도 임신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내 안에 어떤 생명을 품는다는 건 두렵고도 이질적이었고 엄마라는 존재가 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임신하는 꿈을 몇 번 꾼 적이 있는데 그것은 내게 늘 악몽이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결혼을 결심하면서, 이 사람과는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원하진 않았지만 조금 고민이 될 뿐 아주 이상하지도, 악몽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가질지 고민을 하던 중 예기치 않게 임신이 되었다. 이를 곧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산부인과 기준 고령 산모였다. 우리나라는 만 35세 이상부터 고령 산모라고 한다. 요즘은 마흔에도 첫 출산이 많다며 결코 고령이 아니라고 주변에서 격려했다. 하지만 실제로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며 매번 진료실 앞에서 생년월일을 확인할 때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임신 12주가 되었을 때 태아의 목 투명대 두께로 기형아 여부를 살펴보는 데에서 아이는 정상 두께로 나왔다. 추가로 고령 산모에게 권하는 니프티 검사(NIPT)를 으레 권고받았고 남편과 나는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검사를 했다. 나는 고령 산모니까.

결과가 나오기까지 다소 긴장되었지만 다행히 별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들었다. 아이는 건강했다.

나는 왜 이렇게 두서없이 고령 산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는 건강했지만 뒤집기를 해야 할 시기부터 남들보다 한 달쯤 늦은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다 점차 두 달쯤 느린 것 같다, 세 달쯤 느리다, 눈 마주침이 적다, 모방 행동이 없다, 옹알이 수준이 멈추었다……. 이상했다.

영유아 검진 2차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3차 검진에서는 현저히 떨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심화 평가 권고 의뢰서를 받았고, 대학병원에서 발달 평가를 진행했다. 대근육 발달은 정상범위 내에서 느린 편이었지만 나머지 영역인 소근육부터 인지, 상호작용, 언어 모두 지연이라고 진단되었다. 돌이 갓 지난 아이에게 잠드는 약을 먹여 뇌 자기공명영상(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찍고, 작은 팔에서 피를 여러 통 뽑아서 유전자 검사를 했다. 원인을 알기 위해서였다. 원인이 나와도, 나오지 않아도 걱정이 되는 현실이었다. 결론적으로 내 아이 발달 지연은 아직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아이 발달을 위해 일주일에 나흘은 병원에 데려간다. 작업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를 받는다.

치료실 밖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고령 산모였다는 것을. 임신 기간 중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태교라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을. 밝히지 못한 원인이 바로 ‘나’이지 않을까 자책한다.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만, 누군가 나를 타박해 주었으면 한다. 더 힘든 아이와 부모도 많은데 배부른 소리하고 있다고, 고작 마흔도 안 된 주제에 고령 산모를 운운한다고,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가 얼마나 영향을 끼쳤겠냐고, 나를 꾸짖어 주었으면 한다.

나의 감상을 깨우는 종소리가 울린다. 치료 종료 시각을 알리는 소리이다. 한 무리 엄마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각자 자신의 아이를 찾아 번쩍 안아 들고 다음 치료실로 이동하는 단단한 엄마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내 아이가 치료실에서 나와 두리번거린다. 엄마를 찾는 아이만큼 연약하고 측은한 것이 또 있을까. 곁으로 다가가자 나를 보고는 환히 웃으며 달리듯 와서 와락 안긴다. 온 힘을 다해 치대는 어리광을 받아주는 나는 단단한 엄마이다.

|김혜인. 16년 차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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