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산업 돌연 ‘매각 철회’ 선언한 이유는… “장사 잘 하면 연 2000억 버는데, 인수가격 너무 싸”
화학 소재 업체 송원산업이 지난달 28일 돌연 매각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송원산업은 앞서 최대주주 박종호 회장 등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하고 본입찰에 들어갔으나, 결국 세 원매자 모두에게 회사를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박 회장 측이 결국 변심한 이유를 몸값에 대한 높은 기대치 때문이라고 본다. 시클리컬(cyclical·경기 사이클을 타는) 산업 특성상 경기가 회복되면 지금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데, 지금 당장 현금이 급하지도 않은 상황에 무리해서 매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송원산업은 지난달 11일 본입찰을 진행했지만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하지 않고 매각 계획을 철회했다. 매각 대상은 박 회장 등의 경영권 지분 35.65%였다. 인수전에는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PE), 티케이지태광(옛 태광실업), 심팩 등이 참전했다. 매각 주관사는 골드만삭스였다.
송원산업은 1965년 설립된 중견 기업이다. 다양한 화학 소재를 전문적으로 제조하고 있으며, 특히 플라스틱의 제품 변형 등을 막는 산화방지제 시장에서 세계 2위 점유율(22%)을 기록 중이다. 1위 업체는 독일 바스프(BASF)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송원산업이 3000억~4000억원의 가격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제 매각가도 3000억원대 초중반에 결정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딜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송원산업이 진짜 원했던 가격은 4000억원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3000억~4000억원은 사실 송원산업의 현재 시장가격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송원산업의 시가총액은 4000억원으로, 지분 35.65%의 가격을 단순 계산하면 1400억원에 불과하다. 이 지분 값이 3000억원이 되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100% 이상 얹어줘야 하며, 4000억원이 되려면 프리미엄은 180%대로 치솟게 된다. 송원산업의 상장 후 역대 최고가(3만2000원·2018년 4월 19일)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합리적인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나온다. 이 경우 매각 대상 지분 가격이 2700억원인 셈이니, 프리미엄 50%를 붙이면 4000억원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송원산업의 현재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돼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 회장 측 입장에도 일리가 있다. 지난 2022년 송원산업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2179억원이었다. 기업가치대비 상각전영업이익(EV/EBITDA)이 2.7배에 불과하다. 경쟁사 바스프와 스위스 클라리언트(Clariant)의 EV/EBITDA가 5~6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송원산업 주가는 현저히 저평가 받고 있는 셈이다.
증권 업계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송원산업의 실적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며 현 주가가 지나치게 낮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중국 내 화학제품 및 내구재 재고가 점차 줄어들고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며, 산화방지제를 만드는 송원산업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영진 NICE디앤비 연구원은 “현재는 2019년 시작된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 하락기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경기 하락은 짧으면 1년, 길게는 2~3년 간 지속되고 이후 개선기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3년에는 전방산업의 경기 둔화에 따라 매출이 줄어들겠지만, 주기적 경기 변동 특성을 고려할 때 근기간 내 호황기가 도래하고 수요가 증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주주 입장에선 ‘매년 2000억원을 버는 회사인데 고작 3000억원을 받고 경영권을 영영 넘겨버리기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수자 입장에서는 EBITDA 2000억원이 일시적인 호실적일 뿐, 변동성이 워낙 큰 업의 특성상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소신껏’ 가격을 적어낸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 업계에서는 송원산업의 작년 EBITDA가 1200억원에 못 미칠 것으로 추산한다.
이번 지분 매각을 철회한 만큼, 송원산업은 화학 업황과 M&A 시장이 회복돼 주가가 오를 때까지 기다리며 적당한 시기를 볼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재추진 시점 등은 정해진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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