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마을 살린 밀가루…빵 마을로 새롭게 태어난 ‘미원면’ 아시나요?
2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인구 4666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 빵굽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냄새를 따라 가보니 작은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역 주민들이 뭉쳐 만든 마을기업 ‘미원 산골 마을 빵’이다.
건물 지하 1층에서는 빵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카스테라 반죽을 계량해 빵틀에 넣거나 물방울 모양의 반죽을 길게 늘인 뒤 돌돌 말아 소금빵을 만들었다. 갓 구워진 빵들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카페와 함께 운영되는 1층 판매장으로 옮겨졌다. 빵들이 하나 둘 진열대에 놓이자 고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미원에서 40년째 사는 이영수씨(62)는 일주일에 한 번 이 곳에서 식빵 등을 구입해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고 했다. 이씨는 “변변한 빵집 하나 없던 시골에 빵집이 생겨 자주 찾는다”며 “최근에는 청주 도심과 다른 지역에서도 빵집을 찾아온다. 마을의 자랑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시골 지역 주민들이 뭉쳐 만든 작은 빵집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쌀이 많이 나 지역 이름도 미원(米院·쌀안)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원면은 괴산과 보은 청주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터미널도 있었다. 한때 유흥가가 만들어질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시골 마을이 됐다. 2014년 5445명이었던 미원면 인구는 지난해 11월 말 현재 466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빵집을 연 것은 김희상 동청주살림영농조합법인 대표(51)다. 김 대표는 20년 전 귀농해 미원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그가 빵을 접한 것은 2018년 ‘빵 굽는 신부’로 유명한 오동균 신부의 요청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빵 재료로 쓸 우리밀 농사를 지어달라’는 오 신부 부탁에 따라 밀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며 “오 신부에게 덩달아 빵 기술을 배워 지역 주민들과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20년 김 대표는 뜻이 맞는 주민들과 빵집을 열었다. 천연발효종을 사용해 만든 통밀빵과 캄파뉴를 선보였다. 반응은 냉담했다. 지역 노인들은 딱딱한 빵을 ‘입천장까지는 걸 누가 돈 주고 사서 먹겠느냐’며 외면했다.
청주시농업기술센터로부터 기술교육을 받아 재도전에 나섰다.
이 빵집은 2021년 미원 사과즙을 이용한 모닝빵, 단팥빵, 육쪽마늘빵 등을 선보였다. 직접 수확한 우리밀과 지역 농산물을 재료로 썼다. 이때부터 ‘건강한 재료로 만든 건강한 빵’이라는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다.
김 대표는 “2021년 3월까지만 해도 화·목요일에만 빵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몰리면서 4월부터는 주 5일, 같은 해 10월부터는 일주일 내내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매출은 2021년 2억원에서 지난해 3억6000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매주 토·일요일 이 빵집을 찾는 고객 중 80%가 청주 도심 또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 김 대표 설명이다.
최근 지역 이름과 같은 조미료 ‘미원’을 생산하는 대상그룹과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대상그룹에서 생산하는 맛소금을 활용한 ‘미원 맛소금빵’과 미원을 넣은 ‘미원 치아바타’를 내놨다. 미원을 활용한 베이글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빵이 인기를 끌면서 주민 고용 창출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 빵집에서는 지역 주민 10명 정도가 일한다. 김 대표는 “미원지역에 사는 퇴직 공무원과 제빵기술자 등이 충원돼 제빵을 하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지역 노인 2명도 함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원 산골 마을 빵의 목표는 밀을 지역 상징으로 만드는 것이다. 미원 산골 마을 빵 덕분에 이 지역 밀 재배면적은 2020년 0.3㏊에서, 2021년 1㏊, 2022년 10㏊로 늘었다. 밀 농사는 동청주영농조합법인 소속 주민 조합원 40여명이 한다.
김 대표는 “밀 재배 면적을 늘릴 계획”이라며 “밀 수확축제, 우리밀 맥주 체험 등 다양한 관광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주 쌀 브랜드 ‘청원생명쌀’처럼 우리밀 브랜드를 내놓고 싶다”며 “우리밀 생산을 늘려 청주 전역에 밀 생산단지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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