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기를 기회로'…ESG 경영과 협동조합

2024. 1. 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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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빼고는 경영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2021년 이후 국회에 상정된 관련법 개정안 및 제정안은 100여 건이 넘는다. 법안들의 핵심 골자는 ESG 관련 공시내용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우수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ESG 관련법은 기업 경영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 조직을 비롯한 모든 기업 및 협동조합도 ESG 경영에서 예외일 수 없다. 2022년 농협대학이 개설한 ESG경영과정을 수료한 후 농협 경영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을 받으며 느꼈던 점은 ESG 경영이 협동조합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협동조합은 태생적으로 ESG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제협동조합기구(ICA)가 1995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규정한 협동조합 7대 원칙에는 ESG 경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환경(Environment)과 관련해 명시적으로 규정된 협동조합 원칙은 없지만 농업이 가지는 환경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ESG와 농업은 불가분의 관계다. 농업은 친환경 농법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영농 기법으로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도시농업의 환경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시농업의 환경적 가치는 생물 다양성 증진에 따른 생태적 가치가 1,810억원, 도시 열섬현상 완화에 의한 환경정화 가치가 1,854억원, 옥상녹화와 도시녹화 등이 1,789억원으로 총 7,861억원에 이른다.  

환경과 관련한 농축협의 실천사례도 눈여겨 볼만하다. 경남 함양농협의 ‘ESG양파’는 재배와 유통 단계에 저탄소 인증 등 ESG 요소를 적극 반영한 상품이다. 재배 시에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생분해성 필름을 사용하고 포장에는 6개월 이내 자연분해되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환경오염 우려를 덜고 폐기비용을 절감했다고 한다. 강원도 한반도농협에서는 친환경생분해필름을 농업인에게 적극 권장하고 고기 배설물과 사체, 이끼 등을 섭취해 ‘하천의 청소부’로 불리우는 다슬기를 하천에 방류해 ESG 경영을 실천하기도 했다. 

사회(Social)와 관련된 협동조합원칙은 제7원칙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체이지만 조합원들이 속한 지역사회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공동체인 지역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책임의식을 토대로 운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와 관련된 농협의 대표적인 사업이 로컬푸드다. ‘로컬푸드 운동’은 지역내에서 생산된 식품을 지역에서 소비하기 위해 1990년대 초 유럽에서 처음 시작됐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가 국제 문제로 대두하면서 탄소 마일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로컬푸드가 주목받고 있다. 2012년 전북 용진농협에서 처음 시작된 농협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2022년 기준 전국에 866개소가 운영중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안전한 먹거리를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근거리 공급체인을 구축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로컬푸드사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지배구조(Governance)와 관련된 원칙은 제2원칙인 ‘조합원의 민주적 관리’이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이다. 이는 협동조합 내부의 통제권이 민주적인 방식에 따라 조합원에게 배분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통제권의 '민주적 배분'은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와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농협의 경우 통제권을 민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농협법 개정을 통해  지배구조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자산 총액이 2,500억원 이상인 농축협은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운영하고 자산총액이 1,500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경영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상임이사와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있다. 특히, 내부통제 강화와 내실있는 윤리경영 실천을 통한 신뢰 확보를 위해 자산총액이 1조원 이상인 농축협은 상임감사를 의무적으로 두어야 한다. 

농축협이 자율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한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북 전주농협의 경우 농협법과 정관에 ‘선출직 임원 등’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농식품부 인가를 통해 정관을 개정해 조합장 뿐만 아니라 이.감사에 대해서도 연임을 2회로 제한하였다. 선거 관련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조합원들끼리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선거 풍토를 정착시켜 조합원들의 경영참여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례로 평가하고 싶다. 전남 순천농협의 청년이사 제도도 마찬가지다. 만 45세 미만인 조합원 중에서 비상임이사 1명을 선출하여 농협경영에 참여시킴으로써 청년조합원의 농업·농촌·농협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정부의 청년농업인 육성정책에도 부응할 수 있는 지배구조개선 사례로 볼 수 있다.

ESG 경영을 디딤돌로 삼아 지속가능 경영의 토대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걸림돌로 내버려 두어 시장에서 도태될지는 전적으로 기업의 몫이다. 

협동조합도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 이사회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된 로컬푸드를 지역내 업체에 판매하고 수익의 일정부분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구조야 말로 농축협이 가장 쉽게 접목할 수 있는 ESG 경영 실천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전국 1,111개 농축협이 각자의 경영 여건과 지역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ESG 경영 실천방안을 발굴해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면 지속가능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합천 율곡농협 강호동 조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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