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회장 `셀프 연임` 두둔한 시민단체
최정우 회장, '5천자 분량 새해 각오' 밝혀....사실상 '연임 도전' 해석
윤 대통령 함께 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엔 참석 안해
국민연금, "친 최정우 포스코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된 후추위는 문제"라는 입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포스코홀딩스의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비판한 것과 관련, 좌파 성향과 친노동 단체들이 일제히 국민연금공단을 비판하고 나섰다.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의 '셀프 연임'을 두둔하는 모양새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30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하 연금행동)은 2일 논평을 통해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 활동으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그렇지만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기금운용에 개입하거나 개별 기업의 의결권 행사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은 매우 위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연금행동은 "현재의 포스코 회장 선출 과정이 장기적 주주가치 제고에 저촉되는 셀프연임 구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비판은 정당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올바른 내용의 주주권 행사라도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활동이 공개서한 발송, 비공개·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주주권 행사 등 공식적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행동은 "차기 회장 선임과 관련해 '정권 실세 개입설' 등 많은 오해와 우려가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 원칙에 입각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며 "수탁자 책임 활동이 이를 벗어나 선택적·위법적으로 이뤄져서는 안되며, 혹여 주주 이익을 명목으로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언론과의 통화에서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지분 보유율 6.71%)인 포스코홀딩스의 차기 회장 선임과 관련해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 절차에 따라 선임 절차가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KT 사례에 비춰볼 때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공정한 측면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KT 사례 때 밝힌 바와 같이 주주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내·외부인의 차별이 없는 공평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KT의 경우 국민연금의 공정성 지적을 받아들여 올 6월 사외이사를 대거 교체해 기존 CEO(당시 구현모 사장)의 입김을 배제했다. 그런 뒤 주주 및 외부기관 추천으로 후보를 공모해 현재 김영섭 사장을 선출했다.
현재 포스코홀딩스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는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됐는데, 이들은 모두 최 회장의 재임 기간에 새로 선임됐거나 재선임된 인물들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현재의 구조가 최 회장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도록 설계돼 객관적으로 후보자를 선출할 수 없다고 본 것"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장의 발언은 최정우 회장의 재연임에 사실상 브레이크를 건 것으로 해석됐다.
한편 오는 3월 임기가 끝나는 최정우 회장이 한 차례 더 연임에 도전할 것인지 의중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최 회장은 이날 5400자가 넘는 장문의 신년사를 발표해 올해 굵직한 사업 방향을 제시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최 회장이 '3연임 도전' 의지를 구체화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최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사업 성과를 평가하고, 철강, 이차전지를 비롯해 친환경 미래소재, 친환경 인프라 등 주요 분야의 사업 방향을 제시하며 '새해 각오'를 다졌다. 그는 작년 성과에 대해 "과감하고 선제적인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전환)과 친환경 중심의 성장 비전은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호응을 받아 기업 가치도 큰 폭으로 상승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최 회장은 △수소 환원 제철 공법인 하이렉스(HyREX) 시험 플랜트 구축 △염수·광물 리튬 1·2단계 사업 성공적 완수 △ 양·음극재 생산 능력 확대 △저탄소 발전 사업 추진 △도시재생사업 시장 지배력 강화 등 올해 사업 방향을 세세하게 제시했다. 철강부터 이차전지, 인프라·건설에 이르기까지 그룹 전 사업 영역에 걸쳐 목표를 밝힌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18년 7월 포스코그룹 회장에 올라 2021년 3월 연임에 성공, 현재까지 5년 이상 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룹 안팎에선 최 회장의 용퇴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듯했다. 문재인 정부 때 취임한 최 회장이 2000년 포스코 민영화 후 최초로 정권 교체 후에도 온전히 임기를 마치는 첫 기록을 세우는 상황에서 새 인물이 포스코그룹의 지휘봉을 넘겨받지 않겠느냐는 시각과 맞물린 것이다.
최 회장은 재연임에 도전할 것인지, 이번 임기를 끝으로 물러날 것인지 분명한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최 회장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달 1차 차기 회장 후보군(롱리스트) 선정이 차츰 가까워지면서 최 회장이 3연임에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오르는 모양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 스스로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한 번 더 도전하겠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재연임에 도전할 경우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최 회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기를 시작한 만큼 양측 관계는 편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포스코그룹이 '재계 5위'임에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시 경제사절단에 매번 빠진 점이 그 사례로 꼽힌다. 최 회장은 이날 윤 대통령과 주요 그룹 총수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2024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포스코홀딩스 지분 6.71%를 가진 1대 주주 국민연금이 차기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과 관련해 목소리를 낸 점 역시 현 정부와 최 회장의 관계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재계에서는 포스코홀딩스가 '소유 분산 기업'으로 소액주주 지분이 75.52%에 달하고 1대 주주인 국민연금 지분이 6%대에 그치는 만큼 3월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 인선안을 놓고 표 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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