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 가수 카코포니의 삶을 바꾼 엄마의 한마디 “모르겠어”
김민경은 외교관 시험 공부를 하면서 암이 재발한 어머니 간병도 했다. 어머니는 돈과 명예에 유난히 집착하는 분이었다. 특히 돈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게 한두번이 아니다. “엄마, 왜 그랬어?” 병석의 어머니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모르겠어.” 충격이었다. 평생 돈을 좇아온 분이 이제 와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니….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평소엔 조용하다가도 수련회나 장기자랑 무대에만 오르면 뭔가에 홀린 듯 춤추던 아이. 대학 입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밴드 동아리에 발탁돼 학내 가요제 입상까지 한 학생. 하지만 결국은 외교관 시험 준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고시생. ‘난 왜 시험을 준비하지? 주위에서 우러러보는 직업이 진짜 내 욕망인가?’ 답은 어머니와 같았다. ‘모르겠어.’
고시 공부 말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간병하면서 틈틈이 컴퓨터로 음악 만드는 법을 배웠다. 2018년 4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발인 다음날 홀린 사람처럼 곡들을 쏟아냈다. 이를 편곡·녹음해 그해 10월 첫 앨범 ‘화’를 발표했다.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가 탄생한 순간이다. 카코포니는 불협화음을 뜻한다.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기존 음악의 관점에선 불협화음일 수 있지만, 나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각오로 붙인 이름이다. 1집은 앨범 전체가 어머니를 향한 감정의 결정체다.
“신인이 곡을 하루 만에 다 쓰고 여섯달 만에 앨범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돌이켜보면 ‘엄마가 도와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카코포니가 말했다. 1집이 평단의 호평을 받자 그는 가수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이듬해 발표한 2집 ‘몽’은 실패한 사랑 얘기로 채웠다. 이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 후보에 올랐다.
2년 전 새로운 계기가 찾아왔다. 친구가 함께 가보자고 한 동네 폴댄스 학원에 덜컥 등록해버린 것이다. 춤과 운동을 좋아하는 그에게 폴댄스만 한 게 또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것들을 폴댄스로 분출했다. 한발 더 나아가 공연에서 활용해보기로 했다. 2022년 11월 서울 마포구 씨제이아지트 광흥창 공연에서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철가면을 쓰고 노래하고, 폴댄스를 응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너무 재밌었어요. 평소에 철가면 쓰고, 폴댄스 복장으로 뭔가를 하면 이상하게 봤을 텐데, 무대에서 하면 사람들이 ‘와!’ 해요. 아티스트는 무대에서 평소 볼 수 없는 가장 이상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공연으로 ‘역시 나는 무대에 서야 해’라고 확신하게 됐어요.”
또 하고 싶었다.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에 지원해 선정됐다. 2023년 11월25일 서울 광화문 시케이엘(CKL)스테이지에서 3집 발매 기념 공연을 하기로 정했다. 앨범부터 만들어야 했다. 사랑의 신 ‘큐피드’를 거꾸로 뒤집은 ‘디퓩’(DIPUC)을 제목으로 정하고, 사랑의 가해자 콘셉트로 앨범을 만들어나갔다. 절규와 절망의 이전 앨범들과 달리 퍼포먼스를 위해 비트 있고 밝은 분위기로 변신했다.
“엄마의 죽음에서 비롯된 1집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걸 뒤집고 변신하고자 택한 것이 ‘관능’이에요. 관능적인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 관능적인 퍼포먼스를 준비했죠. 무대에서 온몸으로 연기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3집 발매가 예정보다 늦어져 11월23일에야 나왔다. 이틀 뒤 앨범 발매 기념 공연. 이번엔 무대에 폴대까지 설치하고 제대로 된 폴댄스를 선보였다. 현대무용가 3명도 초청해 함께 멋진 무대를 합작하기도 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앨범 발매와 공연 준비를 동시에 하려니 끔찍할 만큼 힘들었지만, ‘근래 본 공연 중 최고였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는 등의 반응을 보고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었다”고 그는 떠올렸다.
“이젠 뭘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내가 행복해져야 내 음악이 매력적으로 들린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앞으론 작은 공연을 여러차례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팬으로 만들고 싶어요. 작은 무대에서도 즐겁게 나름의 퍼포먼스를 해보려고요.” 오는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수동 제비다방이 올해 첫 무대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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