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1800억원 외상에 제2의 둔촌주공 사태… 조합원 분담금 억대
[편집자주][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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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사업 초기부터 계속해서 내분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조합 설립 이후 12년 동안 조합설립 변경인가를 13번이나 신청했다. 임원 변경마다 소송이 따라왔다. 2013년 12월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집행부에 대해 일부 조합원이 선거관리규정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을 이유로 조합설립 변경인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일부 수용해 은평구청이 내준 인가 효력을 정지시켰고 조합장을 비롯한 다수의 이사들이 직무정지당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갈등을 해결하고 2019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아 이주와 철거까지 물 흐르듯 진행되던 재개발은 또 한 번 집행부 해임 문제로 멈춰섰다. 2021년 비상대책위원회에 해당하는 '바른 사업을 위한 조합원 모임'(이하 '비대위')가 조합장 A씨와 집행부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를 발의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조합 집행부가 과도한 연봉을 받고 있고 설계변경에 따라 1년 만에 6000만원이라는 조합원 분양가 상승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같은 해 A씨와 일부 임원에 대한 해임안이 통과됐으나 곧 더 큰 혼란이 찾아왔다. 뾰족한 수가 없이 기존 집행부의 직무정지를 추진한 비대위가 갈팡질팡하며 후임 집행부를 구성하는 사이 공사비와 이에 따른 제반 비용이 지속 상승한 것. 해임됐던 A씨는 이듬해 1월 총회를 통해 다시 조합장 자리에 앉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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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은 2017년 시공사 선정 당시 제시했던 3.3㎡당 431만원에서 원자재 가격과 금융비용 상승 등을 원인으로 100여만원 높은 528만원을 요구했다. 일부 조합원은 비슷한 시기에 착공한 타 사업장보다 턱없이 높은 금액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현대건설은 3.3㎡당 517만원에 조합과 최종 합의해 10월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잘 진행되나 싶던 공사는 1년 2개월 만에 멈춰섰다. 현대건설은 해당 현장에 미청구공사비 약 1800억원을 투입한 동시에 3000억원 규모 신용공여(연대보증)를 제공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 일반분양 일정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조합이 지급할 수 있는 공사비의 대부분은 분양 대금에서 나온다.
분양을 개시하려면 조합 총회를 열어야 하는데 현재 조합장 대신 직무대행이 총회를 개시하려 해도 비대위의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열리기가 쉽지 않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조합 집행부에 공사비 지급을 독촉하는 내용의 공문을 수차례 보냈다. 지난해 8월에는 공사비 지급 이행 확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사태 해결에 효과는 없었고 공정률 약 22%(2023년 11월 말 기준)의 공사는 지하 골조 단계에서 기약 없이 중지됐다. 본래 완공 예정일은 2026년 1월이었다. 한 현장 근로자는 "12월28일부로 현장 철수가 시작됐다"며 "800여명의 근로자들이 언제 재개될 지 모르는 현장을 등지고 떠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현대건설 측은 조합 분쟁이 해결될 때까지 우선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지금까지 외상 공사를 1년여간 해왔고 언제 돈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공사를 하다가 설계변경 등에 대해 협의하거나 책임을 분담할 대상이 없다"며 "조합이 공사비를 지급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경매에 붙일 순 없는 상황이어서 정상화까지 시간을 두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6개월 동안 공사중단 사태를 겪은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사태의 재발을 우려하고 있다. 둔촌주공 조합은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대우건설)에 공사비 지급을 연기해 6개월 간 공사가 중단, 조합 총 손실이 1조원에 달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합 방식은 많은 수의 조합원들이 소위 동업하는 방식인데 각자의 생각과 경제적 사정이 상이하기에 분쟁이 빈번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시로 비대위가 등장하고 조합장 해임이 논의되는 등 안정성 측면에서의 단점이 있으나 이를 상쇄할 만한 장점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조합 방식은 정비사업 방식의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러한 단점 보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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