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당하고, 쫓겨나고···자기 땅에서 밀려나는 서안지구 주민들
가자 전쟁 이후 팔 주민 향한 이스라엘 정착민 폭력 급증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점령 중인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지난해 팔레스타인인을 겨냥한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인권단체 ‘예시 딘’은 지난해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해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10명이 숨지는 등 정착민에 의해 자행된 폭력 사건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10명 가운데 9명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뒤 살해됐다.
앞서 팔레스타인 보건부도 전쟁 발발 이후 87일간 이스라엘군과 정착민들에 의해 살해된 서안지구 주민이 모두 319명에 달하며, 이 중 83명이 어린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된 뒤 서안지구에서는 유혈 충돌과 군사작전이 매일 벌어지는 등 ‘또 하나의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민들을 이곳에 정착시켜 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3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서안지구 점령지 반환과 이스라엘군 철수를 약속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정착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철수하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정착촌들을 잇는 8m 높이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세워 불법적으로 자국 영토를 굳혔다. 이에 따라 살던 곳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정착민 사이에 유혈 충돌이 수년째 계속돼 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안보리)는 2016년 이스라엘에 정착촌 건설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내각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정착촌을 확대해 왔다. 이 같은 정책으로 현재 약 49만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300만명과 살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정부가 나서 정착민들을 무장화시키며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
2006년부터 서안지구에서 정착민 폭력을 감시해온 예시 딘은 지난해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일으킨 폭력 사건이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1200여건에 달한다며 “사건의 숫자와 심각성 모든 면에서 2023년은 정착민 폭력이 가장 극심했던 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특히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10월7일 이후 첫 두 달이 가장 폭력적이었으며, 이스라엘 정착민 수백여명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습격해 수십채의 가옥과 차량에 불을 질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이스라엘 민간인들의 ‘사적 폭력’ 행위가 제대로 처벌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폭력 행위를 저지른 이스라엘 정착민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적을 뿐더러, 수사가 개시되더라도 기소율은 3%에 불과하다고 예시 딘은 밝혔다.
예시 딘은 전년에 비해 정착민 폭력이 감소했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주장도 반박했다. 이 단체는 “정착민 폭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폭력 신고가 급감했다”면서 “정착민 폭력에 관용을 베푸는 이스라엘 당국의 일관된 정책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당국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폭력 피해를 입은 팔레스타인 주민 가운데 57.5%가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정착민 폭력이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극단주의 이스라엘인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밝히는 등 경고에 나섰지만, 새해에도 충돌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이날 “베들레헴 알마니야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집이 철거됐다”며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옥과 생계 수단을 파괴해 거주지를 떠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OCHA에 따르면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소유의 가옥 1119채가 철거됐으며 2210명의 주민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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