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1970년 어느 날, 뉴욕에서 활동하던 화가 김환기는 시인 김광섭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글도 잘 쓰던 김환기는 많은 문인들과 친했는데, 성북동 이웃사촌이던 8살 많은 김광섭 시인과 특히 가까웠고 그를 존경했다.
두 사람은 바다 건너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해 초 김광섭은 환기에게 연하장을 보내며 자신의 시 ‘저녁에’가 실린 월간중앙 잡지를 동봉했다.
환기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달러를 벌어 서울에 돌아가면 자신의 그림을 넣어 호화판 시집을 출간해 주겠노라 약속했던 환기는 그의 시를 펼쳐 읽으며 바로 붓을 들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 ‘저녁에’ 전문)
당시 점화(點畵)에 빠져있던 화가는 화폭 가득 짙푸른 네모 점을 수없이 빼곡하게 그려 넣었다. 한 점 한 점 그리움이었고 슬픔이었다.
마지막 점을 찍은 환기는 시인에게 헌정하듯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붙였다.
이 작품은 그해 한국일보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에 출품돼 대상을 받았다.
그런데 김광섭 시인의 죽음은 잘못 전해진 소식이었다. 그는 그 7년 후에 생을 마감했다. 오히려 이 작품을 그린 지 4년 후인 1974년 환기가 먼저 뉴욕의 병원에서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의 나이 61세였다.
이 시는 10년 후인 1980년 그림과 같은 제목의 노래로 부활하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포크 듀엣 유심초는 이 짧은 시 끄트머리에 몇 구절을 덧붙였다. 별과 사람이 나비와 꽃이 되었다.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그림과 노래의 제목이 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이상하게 가슴에 사무쳐 평생 잊히지 않는 문장이다.
폴 고갱이 사망하기 6년 전인 1897년 타히티에서 그린 대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연상시킨다. 미술사상 가장 길고 철학적이라는 이 그림 제목의 네 번째 질문 같기만 하다. 김광섭의 시는 ‘어디로 가는가’에서 더 나아가 ‘어디서 다시 만나랴’라는 동양적 윤회의 철학이 담겨있다.
이 짧은 시는 한 저녁 별이 뜨고 지는 우주의 변화에 그걸 바라보는 사람을 대입해 인간 존재와 자연, 관계와 만남, 숙명적 이별을 관조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의 별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하나’는 놀라운 관계이자 절대고독이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이지만 ‘밝음 속으로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는 빛과 어둠이라는 합칠 수 없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저녁은 ‘너 하나 나 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이다.
하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마지막 연에서 우리는 완전무결한 부재와 절망만을 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시골 앞마당 멍석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을 헤아렸다.
어둠이 성하면 빛이 물러가고 빛이 성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처럼 깊은 어둠 뒤에는 새벽이 온다. 김광섭 시인은 다른 시 ‘인간은 영원히 있다’에서 “새벽에 죽는 꿈을 꾸고/아침에 산다/…/죽은 사람은 새벽에 나고/산 사람은 새벽에 죽는다/사람은 그 죽음을 품에 안고 참으며/닭의 알처럼 삶을 낳는다/그러니 죽음이 있어도/인간은 영원히 있는 것이다”고 노래했다.
김환기의 저 유명한 그림은 김광섭의 시에 형체를 부여하고, 유심초의 노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묻힐 뻔했던 불후의 한 구절을 우리 가슴에 아로새겼다.
유시형·유의형 형제로 이뤄진 포크 듀오 유심초(有心草)는 1980년에 내놓은 두 번째 정규 음반에 이 노래를 발표했다.
앨범 전면에는 ‘사랑이여’가, 후면에는 이 노래가 첫 곡으로 올라와 있다.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노랫말 ‘사랑이여’(작사·작곡 최용식)에도 별이 나온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머물고 간 바람처럼/기약 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유시형과 같은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던 이세문이 작곡한 걸로 표기돼 있는데, 가사는 달라도 곡은 2년 전 혼성 듀오 물레방아(백영규, 이춘근)가 김광섭 시를 모티브로 삼은 ‘너 하나 나 하나’(이춘근 작사·작곡)가 사실 오리지널이다.
짧은 기간 활동한 물레방아는 ‘순이 생각’, ‘잊지는 말아야지’를 크게 히트시켰는데 백영규는 유심초 형제의 친구였다.
서정성 짙은 노래들을 부른 유심초는 다음 해인 1981년 MBC 10대 가수상 남자 신인 가수상을 받았다. 1985년 활동을 중단했으나 지금도 TV에 자주 얼굴을 비춘다.
노래 가사가 될 줄 몰랐던 이산(怡山) 김광섭(1905~1977)은 함북 경성 출신인데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 교사로 일하며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2년을 옥살이했다. 광복 후 이승만 정부 초대 공보비서관을 지냈고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성북동 비둘기’가 유명한 대표작이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 섬 출신인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는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유학하러 갔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관심이 깊었다. 서정주, 조병화, 정지용, 김광균, 노천명 등 여러 시인과 가깝게 지냈다.
환기는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프랑스 파리로 떠났고 이어 뉴욕으로 갔다. 그는 뉴욕에서 의료보험료를 낼 수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다. 병이 깊어진 환기는 1974년 여름 수술을 받은 다음 날 병원 침대에서 떨어졌다. 키가 커서 침상의 보호장치를 떼어놓은 게 화근이었다. 뇌사에 빠진 환기는 12일 후 즐겨 산보하던 뉴욕의 한 동네 묘역에 묻혔다.
시인 이상과 사별하고 아이 셋이 딸린 이혼남 환기와 재혼한 후 평생을 뒷바라지한 아내 김향안(화가, 본명 변동림)은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을 세웠다. 그는 남편 사후 30년 만에 곁으로 갔다.
지금까지 경매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 한국 화가의 작품 10개 중 9개가 환기의 그림이다(나머지 하나는 9위, 47억 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소’).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점화 ‘우주’가 132억 원에 팔렸다. (실제 낙찰자는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한국 미술품이 100억 원 넘는 가격에 팔린 첫 사례다. 병원비를 아끼다 하늘의 별이 된 환기가 자신의 그림이 이토록 인정받고 자신이 붙인 그림 제목이 노래가 되어 사랑받고 있는지 안다면 행복하겠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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