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윤석열 정부를 만든 20대... 그들의 외로움에 응답하라"
오로지 능력 '탓'이자 '덕'인 '능력주의 지옥'이기에
한국은 도움을 요청하지도, 요청받지도 않는 사회
상속증여세를 재원으로 젊은이들 불안감 덜어주자
"지금 대졸 첫 취업 평균연령이 31세쯤 됩니다. 대기업에 못 가면 보상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다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불안한 취업준비생으로 삽니다. 연애? 결혼? 생각도 못 합니다. 요즘 20대는 가장 외로운 세대이자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계층이 된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도 저출생이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 하지 않았나요. 윤석열 정부 탄생에 20대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면, 현 정부는 이들의 외로움에 응답해야 합니다."
지난달 29일 마주한 정치철학자 김만권(53) 경희대 학술연구교수가 힘줘 강조했다. 김 교수는 지난달 '외로움의 습격'이란 책을 냈다. 외로움이 배제, 차별, 혐오를 낳는다는 서구의 연구는 많다. 멀리는 나치즘의 독일부터 가까이는 트럼피즘의 미국까지. 김 교수는 이를 한국 상황에 접목시켰을뿐더러, '생애주기 자본금'이나 '인생위기전환·대응소득' 도입 같은 나름의 대안을 제안했다.
20대는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가장 외로운 세대
-외로움에 대한 연구 계기는.
"나치즘을 겪은 유럽엔 외로움이 전체주의를 낳는다는 걱정이 있다. 그래서 영국 노동당 의원 조 콕스가 초당적인 모임 '외로움 문제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실제 조 콕스가 극우파에게 2016년 잔혹하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는 2018년 '외로움부(Minster of Loneliness)' 설치로 이어졌다. 이듬해 어느 정신분석센터에서 강의를 했는데 '외로움'이란 키워드를 제시하자 '내가 바로 그렇게 살았다'는 열렬한 고백이 줄을 이었다. 우리 또한 위험수준이란 얘기다."
-책에서 외로움 원인으로 가난, 디지털, 능력주의 세 가지를 꼽았다.
"요즘 '가난' '불평등' 그러면 아무도 안 쳐다본다. 슬프지만 당연한 말이 된 거다. 그보다는 '격차'라 해야 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디지털화는 이 격차를 더 크게 벌린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물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가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건 디지털 사회가 격차를 더 키운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 기본소득이 보장돼야 디지털 세계 또한 굴러갈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능력이란 한 세대만 지나도 세습일 뿐
-능력주의 비판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2018년 한국리서치가 했던 '한국인의 공정성 인식 조사 보고서'를 보면 '능력에 따른 보수 차이가 크면 클수록 좋다'는 응답이 67%에 달했다. 소득별, 이념별, 연령별 같은 다른 변수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세대, 보수·진보 같은 것과 상관없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시작해 거의 40년간 이어지고 있는 '세계가치관조사'를 봐도 한국인들은 '분배의 불평등'을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능력이라는 건 한 세대만 넘어가도 결국 세습이다. 그걸 모른 척해선 안 된다."
-능력주의를 '강박적인 자기 책임의 윤리'라고 했다.
"쉽게 말해 각자도생 사회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공정성이란 '국가야, 살아남는 건 내 능력껏 알아서 할 테니 너는 환경만 조성하라'는 거다. 지금 세대들은 국가나 사회에 제도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요청받는 것도 모두 부당한 일이다. 모두가 기댈 곳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 사회다. 모두가 그렇게 '나 홀로 내버려져 있다'는, 처절하게 외로운 감정에 휩싸여 있다."
자기혐오는 방향 잃은 화풀이로 이어진다
-문제가 안 생기면 이상한 상황이다.
"그런 감정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분노 어린 슬픔' 혹은 '자기 중심적 슬픔'이라고 불렀다. 일종의 울분이다. 울분은 자기혐오에서 시작한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기혐오는 자기 안에만 가둬둘 수 없다'고 했다. 자기혐오, 울분은 무작위적으로 배출된다. '나를 불행하게 한 사람이 너냐' 이러면서 여성, 이주노동자처럼 만만한 사회적 약자에게 화풀이를 해댄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이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트럼프 현상이 대표적이다."
-책에선 '생애주기 자본금' 같은 걸 제안했다.
"강박적 자기 책임의 윤리를 내려놓고, 경청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나 홀로 전부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란 불가능하다. 도움을 요청하고 적당한 제도를 요구하는 일의 필요성과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말을 포용적으로 듣는 경청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생애주기 자본금 같은 건 이런 변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으로 나름 구상해본 것이다."
자산, 소득 불평등을 메워줘야 불안감이 가라앉는다
-좀 더 설명을 한다면.
"생애주기 자본금은 자산 불평등을 메워주기 위해 생애주기에 맞춰, 가령 25세, 45세, 65세에 각각 3,000만 원씩 지급한다. 인생위기전환· 대응소득은 취업준비나 실직 등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 5년 동안 6,000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 불평등 교정을 위해 기초자산제,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나는 모두가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되, 2030세대가 좀 더 혜택을 더 누릴 수 있도록 조정해본 것이다."
-재원은.
"생애주기 자본금은 자산 불평등에 대한 대응이니 아무래도 상속증여세에서 나오는 게 맞을 것 같다. 이건 상속증여세라는 세금의 용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위기전환·대응소득도 상속증여세나 소득세가 맞을 것 같다. 이 제도가 반드시 옳다는 건 아니다. 20대의 외로움에 응답하기 위한 샘플 정도로 봐줬으면 한다. 현 정부가 더 많은 아이디어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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