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과 신현빈의 손으로 쓰는 사랑이 너무나 아름다운 이유('사말')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냥 이렇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가 아니라 그림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고."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차진우(정우성)는 디노라는 이름으로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왜 말해주지 않았냐는 정모은(신현빈)의 물음에 그렇게 답한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제주도에서 정모은이 봤던 벽화 속에는 하염없이 바다만을 바라보다 결국 생을 마감한 한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차진우는 이미 사라져버린 그 남자의 이야기를 벽화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자신이 그렸다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고 온전히 벽화 속 남자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기울이기를 바랐던 거였다.
자신이 후원하던 보육원에서 병을 앓다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소녀를 그는 등굣길 벽에 그림으로 그려넣었다. 투병생활을 할 때 소녀는 친구와 함께 학교를 가는 걸 소망했었다. 또 어느 시장에서 노점을 하시는 할머니의 그림을 담벼락에 그렸다. 곧 철거될 그곳에서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차진우의 그림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건 어딘가 소외되어 사라져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무수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개인전조차 열지 않았다. 자신을 유명하게도 또 부유하게도 해주지 않는 벽화를 남들 다 자는 한밤중에 남모르게 숨어 그려넣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심지어 그것이 들통나 재물손괴죄로 누군가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까지 겪으면서도.
그가 '디노'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벽화를 그리게 된 데는 어려서 겪었던 일들과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에 차진우라 말하고 싶었지만 '디노'라 발음되어 놀림을 당하기도 했던 경험이 그것이다. 그는 그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살다보면 그렇게 조금은 삐걱거리고 약해 빠진 나의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차진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디노가 되어버린 내 두 번째 이름은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조금은 구부정해진 누군가의 뒷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디노라는 이름으로 벽화에 구부정해진 누군가의 뒷모습을 그려넣게 된 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의 마음도 담겨있다. 그런 이들이 있고, 그들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 자신 또한 그런 것처럼.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겠지만 얼마나 그 안에는 자신 또한 하고픈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꾹꾹 눌러놓고 있었을까.
'거리의 이방인 옆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부디 지금은 외롭지 않길.' 그래서 제주도에서 차진우가 그린 벽화에 정모은이 남긴 그 메모는 그에게 크디큰 위로가 됐다. 그는 정모은에게 그 메모지를 보여주며 지금도 가끔 펼쳐본다고 말한다. 고민이 많아질 때 이걸 읽으면 왠지 "그림을 계속 그려도 좋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고 그 고마움을 표현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그려내는 차진우와 정모은의 사랑은 이토록 남녀 간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애에 대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내 귀기울여주고 들어준다는 것.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그 진심어린 소통 위에 이들의 마음이 오고간다. 그건 표피적인 말이 주는 직설적인 사랑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차진우는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조금은 구부정해진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주려 그림을 그리고, 정모은은 그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다. 누군가는 놀림감으로 불렀을 '디노'라는 그 이름도 '좋다'고 말해준다. 차진우가 벽화를 그리고 정모은은 손글씨를 쓴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가만히 다가와 차진우의 등에 정모은이 '사랑해요'라고 손으로 쓰는 장면처럼 아름답다.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벽화를 그렸을 차진우가 아니었을까. 차진우와 정모은의 마음이 겹쳐지는 그 장면이 아련하고 따뜻하고 가슴 먹먹해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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