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늑대/이실비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시]
2024. 1. 2. 13:56
사랑을 믿는 개의 눈을 볼 때
내가 느끼는 건 공포야
이렇게 커다란 나를 어떻게 사랑할래?
침대를 집어 삼키는 몸으로 묻던 하얀 늑대
천사를 이겨 먹는 하얀 늑대
흰 늑대 백 늑대 북극늑대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매일 찾아가도 없잖아
서울에서 만나 서울에서 헤어진 하얀 늑대 이제 없잖아
우린 개가 아니니까 웃지 말자
대신에 달리자 아주 빠르게
두 덩이의 하얀 빛
우리는 우리만 아는 도로를 잔뜩 만들었다 한강 대교에서 대교까지 발 딛고 내려다보기도 했다 미워하기도 했다 도시를 강을 투명하지 않은 물속을
밤마다 내리는 눈
까만 담요에 쏟은 우유
천사를 부려먹던 하얀 늑대의 등
네 등이 보고 싶어 자고 있을 것 같아 숨 고르며 털 뿜으며
이불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영원
목만 빼꼼 내놓고 숨어 다니는 작은 동물들
나는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 없는데 하필 너를 데리고 집에 왔을까 내 몸도 감당 못하면서
우리는 같은 멸종을 소원하던 사이
꿇린 무릎부터 터진 입까지
하얀 늑대가 맛있게 먹어치우던
죄를 짓고 죄를 모르는 사람
혼자 먹어야 하는 일 앞에서
천사는
입을 벌려 개처럼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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