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나솔' 없는 지상파 3사 시상식…뭣이 중헌디?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상(賞)의 권위는 어디에 기인할까? 단연 희소성이다. 정말 빼어난 이들이 받아야 타당하다. 아무나 받는다면? 그건 상으로서 권위도 가치도 없다
스포츠와 비교해보자.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수상자의 실력 차이는 얼마나 될까? 4년 간 오롯이 올림픽을 위해 피땀 흘린 이들의 격차는 '종이 한 장'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 당일의 컨디션, 대진운, 실수 유무 등이 메달의 색을 가른다. 그렇기에 각고의 노력 끝에 금메달을 품에 안은 선수는 더 박수 받고 눈물 흘린다.
그런 면에서 2023년을 마무리하며 열린 각종 지상파 시상식은 또 다시 낙제점이다. 왜일까?
지난해 12월30일 방송된 'SBS 연기대상'은 시상식이 아닌, 한 해 동안 SBS 드라마에 출연한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송년회 같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대상을 쪼갰다. 2023년 송출된 TV 드라마를 통틀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모범택시2'의 이제훈의 대상 수상이 유력했지만, SBS는 '악귀'의 김태리를 공동 대상 수상자로 지목했다. 두 사람이 수상 소감 순서를 두고 시상대 위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대상 수상자들의 재치있는 행동으로 인해 웃고 넘겼지만, 대상의 가치는 적잖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시상 부문 쪼개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는 앞선 두 편을 포함해 '낭만닥터 김사부3', '트롤리',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꽃선비 열애사', '법쩐', '마이 데몬', '국민사형투표', '7인의 탈출' 등 10편 정도다. 하지만 '장르/액션', '멜로/로코', '시즌제 드라마'로 세분화하며 더 많은 배우들에게 상을 '챙겨'줬다. 그렇다 보니 후보가 단 2명 뿐인 부문이 속출해 긴장도가 떨어졌다.
'참석=수상'이라는 공식도 여전했다. 이제훈, 김태리 외에 대상 후보였던 '낭만닥터 김사부3' 한석규,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 김래원은 불참했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도 돌아가지 않았다.
'SBS 연예대상'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부문이 속출했다. '미식랭 스타상'(박나래), '골든 솔로상'(탁재훈·임원희·이상민·김준호), '에코브리티상'(차인표·류수영·정상훈·제이쓴), '명예사원상'(임원희), '핫이슈상'(이동건) 등이 난무했다. 각 수상자들이 출연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속 캐릭터에 따른 '맞춤형' 시상이다. 하지만 표현이 좋아 '맞춤형'일 뿐, 일단 시상식에 참석하면 빈 손으로 보내지는 않겠다는 쓸데없는 오지랖의 향연이었다.
'SBS 연예대상'이 아닌 '골때리는 그녀들 연예대상'이라 볼 만한 장면도 포착됐다. 해당 프로그램 만을 위해 3개 부문 시상이 진행됐다. 100경기 이상 뛴 멤버인 사오리·안혜경·송해나·오나미·김민경·정혜인·이현이·조혜련에게는 '센추리 클럽상'이 주어졌고, '야신상'(키썸), '푸스카스상'(김승혜) 등을 마련했다. 그들만의 감동이자, 그들만의 잔치였다.
타 방송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3 KBS 연예대상'은 대상 수상을 둘러싼 대중의 불만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이 시상식에서 대상의 주인공은 KBS의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인 '1박2일'팀이었다. 하지만 '2023년'에 가장 빼어난 활약을 보인 예능인에게 시상한다는 측면에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옥탑방의 문제아들' '홍김동전'을 이끈 김숙이 더 유력한 수상 후보로 손꼽혔다.
이를 두고 시상식 직전 '옥탑방의 문제아들'과 '홍김동전'의 1월 폐지 소식이 알려진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이란 추측이 불거졌다. 김숙에게 대상을 안긴다는 것은 두 프로그램의 폐지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KBS 연예대상'은 고질병 같은 '공동 수상'의 늪에서도 허우적댔다. 공동 수상자만 무려 29명을 배출했다. 우수상, 신인상, 아이콘상, DJ상, 방송작가상, 커플상 모두 2팀에게 나눠 가졌다. '최고' 즉, 단 1명에 해당되는 '최우수상' 역시 공동 수상이었다. "오늘 100초 소감이 지나면 KBS 로고송을 강제로 틀 것"이라는 MC들의 예고는 결국, 공동 수상 남발로 인해 시상식이 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이는 주객이 전도됐다. 긴장감 속에 단 한 명의 진정성 있는 수상자를 발표한 후, 치열한 경쟁 끝에 트로피의 주인공이 된 수상자에게 수상 소감을 말할 200초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KBS는 그 반대를 선택했다. 공동 수상에 이은 100초 소감룰은 시상식 러닝타임을 줄인 것이 아니라 시상식의 감동을 반감시켰다.
2019년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 후보였던 방송인 김구라는 "제가 대상 후보인 자체가 제가 납득이 안 되는데 시청자들이 납득이 될지 모르겠다. 방송사에서 구색을 맞추려고 여덟 명을 넣은 것 같다"면서 "연예대상이 이제 물갈이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 정확하게 방송 3사 본부장들이 만나서 돌아가면서 (연예대상 시상식을 개최해야 한다)… 이제 바뀔 때 됐다. 많은 시청자들이 오랜만에 김구라가 옳은 소리 한다고 할 거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당시 김구라의 지적은 대상 소감보다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지상파 3사 연예대상, 연기대상 모두 매한가지다.
게다가 지상파 3사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최고 화제 드라마는 '더 글로리'다. 화제 예능은 '나는 솔로' 16기다. 김구라의 말대로 통합 시상식을 열든지, 해당 시상식이 '우리들만의 잔치'이니 상관말라고 양심선언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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