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 데굴데굴 푸바오…판다는 왜 구르는 걸 좋아하나요

김지숙 기자 2024. 1. 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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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눈이 내린 2023년 12월20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판다 푸바오가 눈밭 위에서 즐거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자이언트 판다는 왜 앞구르기를 좋아하나요?

2023년 동물계 최고의 인기스타, 단연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의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가 아닐까 합니다. 푸바오의 인기 비결을 알아본 한 설문조사를 보면, 그 이유로 ‘매력적인 성격’과 ‘귀여운 외모’가 꼽혔습니다. 실제로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푸바오가 마침 내린 눈밭을 데굴데굴 구르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모습은 보는 이를 절로 미소 짓게 합니다. 그런데 푸바오는 왜 이렇게 굴러다니는 걸까요. 푸바오만 이럴까요, 아니면 판다들이 모두 그런 걸까요.

A. 동물복지가 좋고, 긍정적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 살고 있는 동물은 놀이 행동도 늘어납니다.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푸바오가 사육환경이 열악한 곳의 곰보다 많은 놀이 행동을 보이는 것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최태규 수의사)

푸바오는 별명 부자입니다. 용인 푸씨, 푸린세스, 푸뚠뚠, 푸룽지, 푸장꾸, 푸짤렐라, 용인시 털 주먹 등등 인기만큼 애칭도 많습니다. 특히 꾸러기, 누룽지, 털 주먹 등은 푸바오의 성격과 행동이 반영된 별명입니다. 푸바오의 일상이 공유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푸바오는 대체로 대나무나 워토우(곡물 빵)를 먹고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눈이 내리거나 기분이 좋으면 방사장을 굴러다니거나 뛰어다니고, 식물을 부러뜨리거나 뽑는 등의 ‘말썽’을 부립니다.

푸바오의 인기 비결을 알아본 한 설문조사에서는 그 이유로 ‘매력적인 성격’과 ‘귀여운 외모’가 공동 2위로 꼽혔다. SBS 방송 화면 갈무리

팬들은 이런 점을 푸바오 만의 매력 포인트로 꼽는데요, 이렇게 앞구르기를 좋아하고 몸에 흙과 눈을 묻히기 좋아하는 건 푸바오 만이 아닙니다. 매년 국외 여러 동물원은 판다가 눈썰매를 타거나 풀장에서 물장난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있거든요.

판다들은 왜 이렇게 굴러다니는 걸까요.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추측합니다. 첫째, 판다가 전반적으로 게으른 동물이란 점입니다. 판다가 들으면 억울한 평가일 수는 있지만 이건 판다의 독특한 생태에서 기인합니다. 판다는 대나무만 먹는 채식주의자로 유명하지만, 육식동물의 소화기관을 지닌 식육목 동물입니다. 그러나 여러 환경적 조건 탓에 대나무를 주식으로 먹도록 진화했죠. 영양가가 적은 대나무로 평균 몸무게 100~160㎏의 체격을 유지하려면 온종일 먹고 충분히 쉬는 수밖에 없습니다.

눈이 내린 지난 20일 오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판다 푸바오가 먹이를 먹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판다는 하루 평균 9~14㎏의 대나무를 섭취해야 하며 하루 14시간 이상을 먹이를 먹는 데 사용합니다. 그 외에 시간에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누워있거나 잠을 잡니다. 2015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보면, 판다 몸의 대사율은 코알라보다 낮아서 나무늘보 수준이었습니다.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는 생태 조건과 더불어 몸통이 둥글고 팔, 다리가 짧은 특유의 체형은 구르기에도 아주 적합하니 안 구를 이유가 없는 것이죠.

둘째, 이런 구르기가 ‘놀이 행동’에 해당한다는 의견입니다. 중국 쓰촨성 청두 판다연구기지 연구원과 미국 애틀랜타동물원 전문가들은 판다가 구르고 넘어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놀이 행동이며, 이뿐 아니라 나무에 오르기나 떨어지기 등도 즐긴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은 판다가 새끼일 때 뿐만 아니라 자라나면서도 이런 행동을 보이고 성체 어미도 함께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판다의 신체 발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동물단체들이 보호하고 있는 강원 화천의 곰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사육곰들이 바닥에 뒹굴뒹굴하며 놀이 행동을 보인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국내 전문가는 판다뿐 아니라 다른 곰들도 이러한 놀이 행동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수의사)는 “오랜 세월 철창에 갇혀 있던 사육곰들도 방사장과 풀장이 생기자 앞구르기를 하거나 장난을 치는 모습이 관찰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놀이 행동은 특정한 목적성이 없고 재미로 하는 행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동물들이 긍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 주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푸바오가 눈밭에서 구르고 장난을 많이 치는 것은 그만큼 현재 사육상태와 복지가 좋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단체들이 보호하고 있는 강원 화천의 곰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사육곰이 풀장에서 물놀이하고 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강원도 화천의 한 곰 사육농장의 곰을 구조해 돌보고 있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 2022년 11월 방사장인 ‘곰숲’을 만들었는데요. 평생 철창에 갇혀 있던 사육곰들도 방사장이 생기고 나서는 여러 놀이 행동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다만 판다가 놀이 행동으로만 앞구르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 푸바오는 동생 루이바오·후이바오를 위해 방사장 환경을 정비하자 연속적으로 앞구르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긍정적 반응뿐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대한 흥분도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2011년 12월16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동물원을 찾은 한 어린이 관람객이 자이언트 판다를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궁금증 플러스, 한 걸음 더

다양한 놀이 행동을 보이는 푸바오, 우리가 걱정할 건 없는 걸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판다가 야생동물이며 동물원이 아무리 노력해도 판다 종에게 맞는 서식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사육 환경은 야생 판다 서식지와 위도, 일조량, 기온 등이 달라 판다의 생활 리듬, 번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600마리 이상의 판다가 사육 상태에 있지만, 이런 개체들이 야생에 재도입되는 비율은 굉장히 낮습니다.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2021년 중국에서는 14마리의 판다가 야생에 방사되었는데 그중 9마리만이 생존했고, 방사 후 번식에 성공한 개체도 원래 야생에 살던 개체였다고 합니다. 동물원의 종 보전 프로그램이 야생 개체 복원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사육 상태의 판다들은 야생에 있는 친척들을 위한 ‘홍보대사’가 아니”라고 꼬집습니다. 최태규 대표 또한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은 여러 시민에게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볼 때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는 계속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했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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